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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30   우리 반 일용이
2013.01.30   한 출판권력에 대한 어느 '책'읽는 노동자의 의문
2013.01.30   이렇게 평범한 사람이 '테러리스트'라고요?
2013.01.09   상상해보자, MBC 노조가 사장 뽑는다면 (미디어스 기고글)
2013.01.03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 철학, 자본주의를 뒤집다
2013.01.02   2012년에 읽은 가장 기억에 남는 책 -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2013.01.01   히스토리아 - 주경철의 역사 에세이
2013.01.01   9월이여, 오라 - 아룬다티 로이 에세이집
2012.12.27   거짓말 잔치라고?
2012.12.24   금서, 시대를 읽다


우리 반 일용이

<우리 반 일용이>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양철북, 2013



145쪽


재진이의 눈물


재진이는 평소에 말이 없다. 제 이름자를 겨우 쓰는 정도니 공부를 잘한다고 할 수 없다. 동무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는다. 다른 아이들이 피하는 건 아닌데, 남과 어울려 노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늘 혼자서 그림책을 들여다보고 논다, 잘 웃지도 잘 울지도 않으니 늘 조용하다. 

그런 재진이가 하루는 갑자기 울음을 내놨다. 그것도 훌쩍훌쩍 소리 죽여 우는 게 아니라 아주 으앙으앙 소리를 내며 서럽게 우는 것이다. 

"재진아, 왜 그래?"

우느라고 대답을 못한다.

"뚝 그쳐. 뚝 그치고 말해 봐. 누가 때렸니?"

그래도 말을 못한다. 

"야, 누구야? 누가 재진이 때렸어?"

아이들은 모두 고개를 가로저으며 서로 눈치만 살핀다. 그렇다면 떄린 아이는 없는 거다. 만약 때린 아이가 있다면, 말은 안 해도 눈길이 한꺼번에 그 아이한테로 쏠리게 마련이니까.

한참 뒤에야 재진이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킨다. 양호실 쪽이다. 

"너 어디 다쳤니? 어디 아파?"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럼 뭐야? 인마, 말을 해야지."

속 좁은 어른은 드디어 짜증을 내고, 때맞춰 재진이가 울음을 그쳤다. 재진이 눈길을 따라가 보니 양호실에서 조그마한 아이가 나오고 있다. 방금 약을 발랐는지 무릎이 빨갛다. 그 아이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복도 끝으로 사라진다. 재진이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읽던 그림책을 다시 펴 든다. 

"옳아. 너 쟤가 다친 것 보고 울었구나."

재진이는 아무 말이 없다. 

"쟤가 무릎을 다쳐 우는 걸 보고 너도 울었더 게지. 그렇지?"

그제야 재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날 재진이는 남의 아픔을 못 본 체하고 살아온 나를 몹시 부끄럽게 했다. (2002년 3월) 서정오, 대구 현풍초등학교



한 출판권력에 대한 어느 '책'읽는 노동자의 의문

여기 여든 살이 넘은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어느 그룹 회장이다. 그 그룹은 업계에서 손에 꼽히는 회사다. 그룹은 여러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는데, 회장의 아들과 며느리와 딸이 맡아서 운영하고 있다. 그 그룹 회장이 이번에 자서전을 냈다. 그런데 그 책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서점에서 많이 팔리고 대중들의 반응이 격한지는 모르겠지만, 책 많이 읽고 글줄이나 쓴다는 양반들이 모두 그 회장의 책에 대해서 찬사를 늘어 놓고 회장이 살아온 삶에 대해서 존경을 마다하지 않는다.


나는 그게 도통 이해가 안 간다. 대를 이어서 한 집안이 그룹 경영 실권을 쥐고 있는 이 비정상적인 회사의 최고 실력자가 쓴 자서전에 대해 칭찬일색일 수 있지? 그 남자가 우리 나라 인문 교양의 산실을 일궈 온 민음사 회장 박맹호라 할지라도 말이다.


서평 쓸 일이 아니었다면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거다. 출판 선배의 인생 이야기에서 배울 것이 많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어느 회사나 사장님이 자기 회사 이야기를 할 때는 아름다운 부분은 과장하고 추악한 부분은 감추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도 도통 믿을 수가 없어서 그렇다. 서평 쓰는 것도 살짝 망설여졌다. 감히 민음사 회장님 자서전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 좋게 쓰면 내 취업 전선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고, 과연 내가 저 박맹호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만한 역량이 되나 자신이 없기도 했다. 그렇지만 칭찬과 찬양 일색인 서평들을 보면서 할 말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 대한 서평들은 대개의 경우 민음사에서 나온 책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서평을 쓴 사람이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이라든지, 특별한 인연이 있거나 기억에 남는 책들 말이다. 나도 민음사 책 가운데 기억에 남는 책이 있다. 『데미안』『삶의 한가운데』『카탈로니아 찬가』『인간 실격』같은 세계문학들과 『돼지꿈』『나목·도둑맞은 가난』 한국 문학 작품들인데 주로 감옥에서 읽었던 것들이다. 『책』을 읽어보니, 그 책들이 어떤 과정으로 나오게 되었는지 알 수 있어 좋았다. 팔십 평생을 출판 외길을 걸어온 사람이 쓴 책이니만큼 우리 나라 출판 역사의 단면들을 살펴볼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우리 출판 역사에 길이 남을 책들이 탄생비화와 여러 우여곡절 들은 여느 무협지 못지않게 재미있었다. 


하지만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 그 불편함은 불행히도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진 고정관념이나 내가 누리고 있는 기득권 때문에 느끼는 불편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의 불편함이었다. 나는 이 책을 노동자의 입장에서 읽으면서 출판업계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고정관념과 기득권을 느꼈다.


하나 예를 들자면 “내 회갑을 기념해 출간되어 양서 읽기 붐을 일으킨 『책, 어떻게 읽을 것인가』”(14쪽)와 같은 구절이 그렇다. 좋은 책을 펴내고, 그 책으로 양서 읽기 붐을 일으킨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헌데, 동네 구멍가게도 아니고 커다란 주식회사에서 최고 경영자의 생일을 기념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만약 삼성이 이건희 생일을 기념해 새로운 노트북을 출시한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애플이 아이폰을 스티브 잡스 생일을 기념해 만들었나? 회사를 회장 개인 소유물로 여기는 이런 시각은 책 곳곳에서 나타난다.


그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아들, 딸, 며느리가 황금가지, 비룡소, 사이언스북 등 민음사 출판그룹의 주요 자회사 사장을 맡고 있는 것, 즉 족벌경영이다. 동네 자그마한 치킨집이라면 아버지가 회장하고 큰아들이 주방장하고 작은아들이 배달하고 자기들끼리 다 해먹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직원이 150명이나 되는 주식회사가 회사 경영진을 한 가족이 다 하고 있는 것은 대개의 경우 옳지 않다. 주식회사는 상법에 따라 회사의 이사를 주주총회에서 선출해야 하는데, 주주들이 한 집안의 구성원에게 경영진을 몰아주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민음사의 경우 주주총회를 거쳐서 그나마 절차적인 정당성이라도 확보했는지 어떤지는 외부인인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책 곳곳에 드러나는 ‘임명’(특히 책 뒤 연보를 보면 ‘몇 년도에 누구누구를 대표이사에 임명’한다는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다.)이라는 표현에서 유추해 볼 때, 박맹호 회장은 민음사를 자기 개인 기업으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 주식회사의 이사를 임명할 수 있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다.


출판사의 구조 문제는 민음사, 박맹호 회장만 비판할 문제는 아니다. 많은 출판사들이 족벌경영을 하고 있거나, 합리적인 노동 조건을 갖추고 있지 않다. 장시간 노동, 고용불안, 임금체불, 잦은 이직, 경영진의 폭언과 인격 모욕, 이른 정년(문화체육관광부에서 만든「2010 성별 문화인력 통계DB-문화예술·문화산업분야」에 따르면 출판 분야 연령 분포에서 40대는 15.5% 50대 이상은 없음이고, 여성의 경우에 40대는 1.7% 50대 이상은 없음으로 더욱 심각하다) 같은 말들이 출판노동자들을 늘 따라다닌다. 출판사 옆 대나무숲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정말 수도 없이 올라왔다.


노동 조건의 문제는 출판 업계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출판사들은 지식 문화 산업을 총체인 책을 만든다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노동자들의 문제의식을 무마하려 한다. 출판사에서 노동조합을 만들 때마다 노동자들은 “우리는 너희를 착취하는 자본이 아니다”, “우리는 출판 운동을 하는 곳이다. 일반적인 회사가 아닌데 어떻게 노사 관계를 맺냐” 따위의 말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공공연하게 이야기 된 적이 없다. 출판업계가 처한 위기 상황을 스마트 폰이나 멀티플렉스 같은 다른 문화 상품과의 경쟁, 도서정가제와 같은 국가 차원의 지원이나 출판 보호정책 부재에서 찾기는 해도 출판사들이 얼마나 낙후된 기업 문화와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 하는 사람은 없다. 노동자들이 겪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해 어느 노동자가 문제제기라도 할라치면, 그 사람은 책에 대한 열정이 없고, 쉽고 편한 것만 찾아가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매도당하기 일쑤다. 이직을 자주 하는 사람은 참을성이 없는 사람이고, 월급이 쥐꼬리만 해서 올려 달라는 사람은 자기 혼자만 먹고 살겠다는 이기주의자가 된다.


그러면서 출판계의 위기를 돌파할 내부 동력은 늘 노동자들의 열정이나 희생에서만 찾으려 하고 있다. 이런 인식은 박맹호의 『책』에도 잘 드러나 있다. “오늘날 출판 위기론이 팽배해 있지만, 동료나 선후배 출판인들의 한없는 열정이야말로 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 가장 큰 잠재력이라고 본다(256쪽)” 이런 생각이 바로 출판사들이 가진 구조 문제를 은폐한다. 열정은 이 일을 잘 하기 위한 조건 가운데 하나이지, 그것만으로 해결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쓰다 보니 책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민음사를 비롯한 출판사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박맹호 회장이 살아온 인생길이 척박한 한국 출판계에서 민음사를 출판 그룹으로 키워내고 5000권이 넘는 책을 만들어온 역사이니, 그의 자서전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출판업계 전반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따라서 이 서평에서 민음사 박맹호 회장에 대해 비판적으로 쓴 것은 비단 민음사와 박맹호만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 출판사들과 그 사장들에 대한 비판이라 해도 좋다.


박맹호 회장이 출판계에 끼친 좋은 영향과 업적을 싸그리 무시하고 싶은 생각도 그럴 깜냥도 없다. 그리고 출판계가 직면한 문제들이 박맹호 회장 탓이라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은 지금 박맹호 회장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는 사람들의 논리 구조와 마찬가지 문제를 가진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 이 책에 대해 찬사 일색의 서평을 읽고 나서 여전히 찝찝하고 씁쓸한 기분이 든다. 그 이유를 브레히트 시에 한 줄 보태는 것으로 이야기 하고 싶다. 브레히트는 시 ‘어떤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에서 이렇게 이야기 했다.


젊은 알렉산더는 인도를 정복했다.
그가 혼자서 해냈을까?
시이저는 갈리아를 토벌했다. 
적어도 취사병 한 명쯤은 그가 데리고 있지 않았을까?
스페인의 필립왕은 그의 함대가 침몰 당하자 
울었다. 그 이외에는 아무도 울지 않았을까?
프리드리히∐세는 7년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 위외에도 
누군가 승리하지 않았을까?


박맹호는 민음사에서 책을 5000권을 펴냈다. 
그가 혼자서 해냈을까?


* 이 글은 「기획회의」325호에  ‘편집자란 무엇인가’란 이름으로 실린 기획기사들에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미디어스 기고글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412 



이렇게 평범한 사람이 '테러리스트'라고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늘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 병역거부 선언을 하고 활동할 때 사람들이 이렇다는 걸 느꼈다. 병역거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내 말과 행동을 보고 겁쟁이와 매국노라고 하고, 병역거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정반대로 나를 신념의 강자나 용기 있는 투사 같은 이름으로 불렀다. 이들은 모두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나를 봤다. 정작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어느 누구에게도 가 닿지 못했다. 나는 지지자들과 반대자들에 둘러싸여 외로움을 느꼈다.

헌데 나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고 싶은 대로 듣고, 사람을 대할 때도 내가 보고 싶은 부분만 보게 된다. 책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특히나 나는 책을 고를 때, 책 저자가 누군지 어떤 일을 했던 사람인지 꼭 알아보고 고른다. 그렇기 때문에 허탕을 칠 가능성은 낮지만, 혼자서 오해를 하고 책을 고를 때도 있다. 

  
 
<꽃피는 용산>이 바로 그랬다. 이 책을 보면서 읽고 싶었던 내용이 분명히 있었다. 용산참사로 구속된 철거민이 감옥 안에서 딸한테 보낸 만화 편지를 엮은 책이라니,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기대를 했을 것이다. 철거민 수감자 아빠가 어린 딸에게 만화로 설명하는 강제철거의 부당성과 망루에 올라가고 감옥에 올 수밖에 없었던 사연, 이런 내용 말이다. 철거민들 이야기를 다룬 책이 여러 권 나와 있지만, 철거민이 직접 자기의 경험을 쓰고 강제철거가 왜 부당한지 주장하는 책은 없었으니까. 어떤 사람은 한 발짝 더 나아가서 감옥 안에서 딸에게 쓴 네루의 <세계사 편력>까지도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서평도 어떻게 써야할지 나름 생각해 놨었다. <내가 살던 용산>에서부터 <꽃피는 용산>까지 용산참사 이후 르포만화들이 쏟아져 나오는 까닭을 언론의 역할과 연결시켜서 쓸 생각이었다.

이 책은 이런 우리 기대를 완전히 배신한다. 책에는 철거민들이 얼마나 큰 폭력에 노출되어 살아가는지, 재개발 정책이 무엇이 문제인지 같은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용산 재개발의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용산 참사 당시 상황도 나오지 않는다. 감옥 안 풍경이 드문드문 나오기는 하지만, 그야말로 김재호 님 얼굴이 나오기 위해서 나오는 배경일 뿐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나 <서준식 옥중서한>처럼 감옥 안 일상과 그 안에서 한 생각들을 드러내지 않는다.

350쪽이 넘는 두꺼운 만화책은 온통 딸 혜연이와 아내 심연에 대한 그리움으로 채워져 있다. 딸이 어렸을 때 함께한 추억들, 바깥에 있는 딸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그리고 감옥에 갇혀서 아빠 노릇 남편 노릇 못 하는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주된 내용이다. 아마도 이 편지들을 처음부터 책으로 내기로 기획을 하고 썼다면, 편집자가 달라붙어 함께 구성을 짰다면 이런 내용과는 전혀 달랐을 것이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이야기를 썼겠지. 그야말로 철거민이 직접 쓴 강제철거의 실상과 용산참사의 진실에 대한 책이 나왔을 거다. 하지만 그건 딸에게 보내는 편지가 아니라 독자들을 위해 보내는 편지다. 그 책이 나왔어도 나쁘지는 않았겠지만, 그건 순전히 독자로서 이기적인 욕심이다. 김재호 님은 자기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기 위해 만화편지를 쓴 것이 아니다.

어쩌면 김재호 님도 병역거부를 했던 시절 나처럼 외로웠을 거란 생각을 해 본다. 한 쪽에서는 도심테러리스트로 부르고 또 한 쪽에서는 돌아가신 분들은 열사가 되고, 살아 구속된 분들은 투사가 되는 분위기였으니까. 그저 할 수 있는 게 망루 짓고 올라가는 일이었을 뿐인데, 어느덧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투사가 되거나 테러리스트가 되어 버렸던 거다. 도심테러리스트와 용산 철거민이라는 낯선 이름 사이에서, 김재호 님은 무척이나 외로워서 원래 자기가 있고 싶었던 자리로 돌아가고 싶었을 거 같다. 자상한 남편이자, 친구같은 아빠. 자기가 꿈꾸던 단란한 가정의 가장 자리 말이다. 이 만화 편지는 아주 평범한 소시민이 어쩌다 철거민이 되고 수감자가 되어서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몸부림으로 쓴 것이다.

  
▲ 지난 16일 열린 용산 참사 4주기 추모콘서트 '꽃피는 용산'에 참석한 김재호 씨와 사회를 진행한 방송인 김미화 씨 ⓒ 뉴스1

실제로 만화 곳곳에서 드러나는 김재호 님의 모습은 빈민운동을 하는 활동가 모습이 아니다. 도심 한복판에서 도로로 화염병을 던져대며 동료와 경찰관까지 죽음으로 몰아가는 폭도와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세상에 남겨진 딸한테, 살찌니까 라면 많이 먹지 마라, 엄마한테 짜증내지 말고 엄마 말 잘 들으라, 자기 전에는 꼭 이를 닦아라 같은 애정 어린 잔소리를 늘어놓는 아빠일 뿐이다. 딸아이가 혼자 다니는 것을 걱정하면서 CCTV가 많이 설치되기를 바라는 모습이나, 경쟁에 뒤처지면 안 된다면서 공부 열심히 하라는 모습은 인권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나 스스로 진보주의자라 여기는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다. 가족에 대해 책임감 넘치는 가장, 자상하고 친구 같은 아빠, 주어진 일에 만족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평범하고 세속적인 소시민. 만화책에 나오는 김재호 님은 어쩌면 많은 부분에서 보수적이기도 한, 드라마나 영화 주인공이 되기엔 스펙타클한 재미가 없는 아주 평범한 이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바로 여기에 이 책의 가치와 이 책이 우리에게 전달해 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김재호 님은 강제철거의 부당성을 주장하거나 철거민들의 생존권에 대해 전혀 이야기 않는다. 그저 수감자가 되어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을 드러내고, 빨리 예전 모습으로 딸과 아내와 도란도란하게 살던 때로 돌아가고 싶은 아주 소박한 욕심만 이야기하고 있다. 김재호 님의 아주 소박한 욕심이 역설적으로 강제철거가 무엇을 파괴하는지를 보여준다.

평범하고 단란했던 한 가족의 일상이 무참히 파괴된 것은 강제철거 때문이다. 엄마와 아빠의 사랑이, 아빠와 딸의 행복한 나날이 파괴됐다. 김재호, 김혜연, 심연 이 세 사람의 일상을 강제철거가 산산조각 내었다. 돈벌이에 눈이 먼 사람들에게는 집이 시멘트 덩어리가 아니라 돈으로 보인다. 투기의 대상으로 보일 거다. 포클레인이 한 번 움직여 벽 하나를 부술 때마다 그 소음이 돈 굴러들어오는 소리로 들릴 거다. 살던 집에서 쫓겨난 철거민들에게도 집은 단순한 시멘트 덩어리가 아니다. 포클레인이 방 하나를 부술 때마다, 그 방 곳곳에 녹아있는 세월들과 추억들, 한 가족의 역사가 함께 부서진다. 행복하고 단란한, 큰 욕심 없는 소시민들의 삶이 부서지는 거다.

세상을 위해 온갖 고난을 겪기로 각오한 혁명가도 아니고, 큰 뜻을 품고 그걸 이루기 위해 고생길도 마다않는 야심가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이 사회가 과연 유지 될 수 있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건설회사가 돈 벌겠다는 게 무슨 큰 죄는 아니겠지만, 이런 사람들의 일상조차도 망가뜨려야만 돈을 벌 수 있다면 그것은 사실은 이 사회 전체를 망가뜨리는 일이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이런 질문을 했다.

이런 사람들이 망루에 오르고, 감옥에 가야 하는 세상이 계속 지속될 리 없다. 참지 못한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거나, 그렇지 못하면 결국 붕괴되고 말거다. 더 이상 벗겨먹을 평범한 사람들이 남지 않게 될 테니까. 세상이 바뀌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게 될 거다. 붕괴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상처입고 다치거나 비참하게 죽게 될 거다. 이 책은 그런 지경까지 이르지 말아야 한다는 일종의 경고문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진보니, 혁명이니, 사회 붕괴니 이런 말 하나도 안 쓰여 있지만, 이 미쳐가는 세상이 파괴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으로써,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강력한 경고를 하고 있다. 이 경고를 무시한다면, 언제든 망루에 오르는 사람들이 생기고 불타는 망루 안에서 또 다시 사람이 죽어 나가는 비극이 일어날 거다. 우리는 이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PS <꽃피는 용산> 출간기념 북콘서트에서 본 김재호 님 얼굴은 밝아보였다. 하지만 딸 혜연이는 아직 아빠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고 한다. 병역거부자 친구들이 떠올랐다. 김재호 님과 비교하면 아주 짧은 1년 2개월을 살았고, 그나마도 스스로 선택한 길이고 감옥에 갈 것을 알고 준비도 하고 가지만, 출소 한 뒤 많이 힘들어 하는 사람들도 있다. 강체철거가, 그리고 3년 9개월의 수감 생활이 김재호 님과 가족들 마음에 많은 상처를 냈을 텐데, 그 상처들이 잘 아물기를 바란다. 그리고 아직 감옥에 갇혀 있는 다른 철거민들도 하루 빨리 감옥 밖으로 나오고 아버지와 다른 철거민들과 경찰을 죽였다는 누명을 벗기를 간절히 바란다.  



*미디어스 기고글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224



상상해보자, MBC 노조가 사장 뽑는다면 (미디어스 기고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인기 있는 말 가운데 하나는 경제민주화였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내용은 많이 다르지만, 모든 후보들이 자기가 경제민주화의 적임자라고 이야기했다. 새누리당조차 경제민주화를 내세웠으니, 가히 경제민주화 열풍이라 하겠는데, 다시 말하면 그만큼 노동자들이 살기 어려운 나라라는 말이다.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공약들은 가장 큰 쟁점이 되었던 순환출자나 출자총액제한 같이 재벌을 어떤 방식으로 규제할 것이냐 하는 것들과 최저임금과 비정규직 차별 해소처럼 사회 약자층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관한 것들이었다. 이 모든 공약들이 잘 지켜지면 좋겠지만, 나는 각 후보들의 경제민주화 공약들을 보면서 약간 아쉬움을 느꼈다.


이건 경제민주화 자체에 대한 아쉬움이라기보다는 노동자 정치 실종에 대한 아쉬움이기도 한데, 온갖 좋은 공약들을 보면서 뭔가 빠진 거처럼 씁쓸했던 까닭은 그 좋은 공약들이 노동자를 ‘위한’ 공약이기 때문이다. 물론 국가차원에서 전체 경제의 큰 그림을 그리는 것도 중요하고, 많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보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다 죽는 나라에서 노동자를 위한 공약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판만 깔아주면 굳이 정치인들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노동자들이 알아서 사회 전체의 경제민주화나 한 회사 안에서 민주적인 경영이 되도록 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경제민주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이야기 되어야 할 것이 노동자들의 경영참여라고 생각한다.


노동자들의 경영참여에 대해 아주 재미있는 주장을 하는 책이 있다. 김상봉 교수가 쓴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이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2012년 읽은 책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책을 꼽겠다.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에서 김상봉 교수가 주장하는 바는 아주 단순 명료하다. ‘주식회사는 원래 주인이 없는 기업이므로 얼마든지 노동자들 또는 종업원들이 경영권의 주체일 수 있으며 스스로 사장을 선출할 수 있다’며 이를 위해 ‘주식회사의 이사는 종업원 총회에서 선임한다’는 법 조항을 상법에 넣자고 이야기 한다. 이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주식회사의 소유권과 경영권에 대해 법적으로 철학적으로 검토하고 다른 나라 주식회사의 지배구조를 살펴보는 것이 책 내용이다. 이론을 주로 다룬 책이지만 그리 어렵지는 않다. 다만 법 용어나 철학 용어들이 조금 생소하긴 하다. 이 책이 아주 신선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내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나는 직원 30여명 정도 규모의 출판사에 다니며 노동조합 활동을 했었는데, 그때 대표이사 가장 많이 한 말이 “경영권은 경영자의 고유 권리”라는 말이었다. 대표이사는 경영을 해본적은커녕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모르고 적자인지 흑자인지도 모를 정도로 경영능력이 의심되었지만, 노사관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 무엇인지 자본가의 본능으로 알고 있었다. 그게 바로 경영권이었다. 단협을 하면서 복지는 양보해도, 임금은 양보해도 절대 양보하지 않는 것, 바로 경영권이었다. 노동조합이 경영권을 조금이라도 견제할라치면 아주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며 분위기를 급속히 냉각시켰다. ‘아 저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게 경영권이구나.’


회사가 절대 노동조합에 양보할 수 없다면, 바꿔 말하면 노동조합으로서는 그것을 취하는 것이 바로 노동자들이 일하기 좋은 회사가 되는 게 아니겠는가. 하지만 경영권에 대한 회사의  집착은 내 상상을 훌쩍 넘어섰다. ‘경영권’은 그야말로 회사에게 전가의 보도였다. 노동조합을 설득시키기 위한 논리나 논리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아니라, 거부할 수 없는 절대자의 말씀 같은 거였다.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크게 바뀌는 결정을 일방적으로 내려 노동조합이 항의를 해도 그 결정은 경영판단이며 경영권은 경영자의 고유 권리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회사 경영과는 아무 상관없는 문제들, 예를 들면 회사 식당에서 나오는 점심 식사 메뉴를 정하는 문제도 경영 판단을 하고 경영권은 침해당할 수 없다고 우기면 끝이었다. 대표이사가 휘두르는 경영권 앞에서 나는 촛불집회에서 끝내 넘지 못한 명박산성을 만난 기분이었다.


그때 이 책을 알게 되고 반갑게 읽었다. 속이 다 시원했다. 경영권은 경영자의 고유권한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대표이사에게 뭐라 반박할 수 없었는데(실제로 판례들에서 경영권은 경영자의 권리라고 판시하고 있다) 아주 강력한 우군을 만난 기분이었다.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만났을 때 이런 기분이 이랬겠지.


김상봉에 따르면 주식회사는 주인이 있을 수 없는 회사이다. 이 말부터 통쾌했다! 나조차도 회사의 주인은 노동자라고 외치면서도, 법적으로는 주주들이 주인이고, 현실적으로는 보통 창업자나 사장이 주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주식회사는 법인격(法人格)을 가진 법인인데, 인격은 곧 사람은 누구의 소유물일 수 없다는 것이 김상봉의 주장이다. 경영권 또한 마찬가지다. 기업을 개인이 사사로이 소유할 수 있다면 경영권은 소유권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니 경영권도 개인이 소유 할 수 있다고 하겠지만, 이미 말했듯이 주식회사는 누구의 소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 기업들은 가질 수 없는 주식회사의 소유권과 경영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가질 수 없는 것들이 태초부터 자기들 거였다고 거의 신앙에 가까운 믿음으로 가지고서 말이다.


김상봉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간다. 주식회사의 경영권이 누구의 소유도 될 수 없는 것이라면, 기업을 참된 의미의 생산 공동체로 만들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에게 경영권을 돌려주자고 한다. 그 방법으로 김상봉은 상법에 ‘주식회사의 이사는 조합원 총회에서 선임한다’는 조항을 넣자고 제안한다.


김상봉 교수는 독일과 미국, 일본의 주식회사 구조를 소개하면서 한국의 재벌 기업 지배구조와 비교하기도 한다. 이 내용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독일 사례였다. 역사적으로 협동조합에서 시작한 회사가 많은 독일은 아직도 그 전통이 남아있다고 한다. 노사 공동결정제도라는 것이 있어서 기업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기업의 이해당사자들 특히 노동자와 주주 그리고 은행이 공동으로 결정한다는 것이다. 김상봉의 표현에 따르면 “가장 놀라운 것은 해고에 관한 공동결정제도인데, 원칙적으로 종업원의 배치나 이전, 부서이동 그리고 해고는 작업장평의회의 동의를 필요한 한다”는 것이다.


사장님들이 보면 팔짝 뛸 내용이지만, 이 주장과 사례들이 너무 반가웠다. 정직원을 전제로 한 수습사원으로 뽑아놓고 맘에 안 들면 하루 아침에 잘라버리고, 정규직 직원들도 무슨 심시티 오락 하듯 부서를 이리 옮기고 몇 달 지나지 않아 저리 옮기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말이 아닌가. 우리에게 꿈같은 일들이 독일에선 이미 법으로 정해져 있다니.


물론 김상봉의 논리가 현실에선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을 알고 있다. 내가 겪은 바로는 회사를 설득할 수 있는 건 논리, 합리성 따위가 아니었다. 회사는 노동조합 힘이 약하면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것조차도 빼앗으려 했고, 노동조합이 힘을 내면 근로기준법보다 좋은 걸 요구해도 받아들였다. 결국 노사 관계를 풀어가는 것은 노동조합이 얼마나 힘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있었다. 노동조합이 약하면,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아무리 완벽한 논리라도 꿰지 못한 구슬 서말과 마찬가지일 뿐이다. 대법원에서 복직시키라고 판결을 내려도 무시하는 게 대한민국 회사들 아닌가. 노동조합과 맺은 단체협약을 휴지조각보다도 더 무시하는 경우가 허다하니 말이다.


김상봉의 주장은 뜬구름 잡는 그저 좋은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 주식회사의 이사를 노동자들이 뽑는다니? 그게 가능하겠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하지만 30년 전만 해도 대통령을 국민들이 뽑는다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였다. 김상봉 교수의 주장은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아주 중요하고 현실적인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보수정당 대통령 후보까지도 부르짖을 정도로 경제민주화가 중요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어느 정치 세력이 정권을 잡든 흔들리지 않는 경제민주화를 이루려면 노동자들이 자기 일터의 진정한 주인이 되어야 한다. 경제민주화가 단순히 국가 차원에서 부의 재분배나 산업구조에서 재벌의 독점을 막는 것만 의미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생각해보자. MBC의 사장을 MBC 노조 조합원들이 뽑는다면, 혹은 한진중공업 사장을 한진 노동자들이 뽑는다면 어떨까? 김재철 같은 이가 사장이 되어 정권에 나팔수 노릇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노동자들이 뽑은 사장이 경영을 못해서 적자가 날 수도 있겠지만 경영 실패를 노동자들의 일방적인 희생인 정리해고로 극복하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노동자의 경영참여나, 노동자가 사장을 뽑는 것이 모든 일을 해결해 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노동자들이 사장의 시혜적인 조치만을 바라보거나 정치인들에게 기대지 않을 수 있다면, 노동자들 스스로가 자기들이 겪고 있는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회사 안팎에서 무언가를 해 볼 수 있다면,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노동 사안들이 실제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사장들은 절대로 경영권을 양보하려 하지 않을 거다. 자기 자리를 노동자들이 결정하게 두지 않을 거다. 그것은 그냥 얻어지지 않을 거다. 아마도 이 책 주장하는 것이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는 까닭은 사장들이 경영권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현실적인 판단이 우리들 머릿속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까지 상상하지 못했던 것, 혹은 전해 들어도 실현되기 어려울 거라고 여기는 것들을 더 많이 떠들 필요가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떠들 때,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일들이 시대의 상식이 되니까. 1970년대 살던 사람들에게 불가능했던 일,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뽑는 일 또한 지금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한 상식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열심히 떠들어야 겠다.


“주주에겐 배당금을, 노동자에겐 경영권을!”


-미디어스 기고글. 원래 내가 단 제목은 '경제민주화노동자들이 직접 사장님을 뽑을 때 가능하다'였음.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866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 철학, 자본주의를 뒤집다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김상봉, 꾸리에, 2012


101쪽

기업의 주인을 바꿈으로써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하겠다는 유혹에 빠지는 까닭은 내가 보건대 인간의 자유가 소유에 기초한다는 전제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노동자가 기업을 소유할 때만 기업의 주인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노동자 아닌 다른 사람이 기업의 주인이라면 노동자는 기업의 주인이 아니라 한갓 고용된 노예에 지나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할 때 자유는 소유에 근거하는 것이다. 이처럼 자유가 소유에 근거한다는 전제를 우리가 받아들인다면, 자본가가 소유한 기업을 노동자가 소유하거나 국가가 소유하게 될 경우에만 노동자가 기업의 주인이 되리라고 추론하는 것은 조금도 잘못된 것이 아니다. 


170쪽

주식회사에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주식이 너무 광범위하게 분산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주식회사의 본질상 주식의 소유와 기업의 경영권 사이에 아무런 필연적 관계도 없기 때문이다. 


187쪽

나라에 따라서는 주식회사의 지배구조에 대해 파격적인 차이를 보이기도 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독일의 노사 공동결정제도이다. 이 제도는 말 그대로 기업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기업의 이해당사자들 특히 노동자와 주주 그리고 은행이 공동으로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략) 이 모든 것들보다 놀라운 것은 해고에 관한 공동결정제도이다. 원칙적으로 종업원의 배치나 이전, 부서이동 그리고 해고는 작업장평의회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 


188쪽

독일의 주식회사법은 주식회사의 이사회를 구성할 때 노동자 대표를 이사진에 참여시키는 것을 의무화해 두었다. 


234쪽

주식회사는 본래적으로 주인이 없는 법인기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주인이 되어 기업을 경영하면서 마치 자기 사유물인 것처럼 행세한다면 필경 이는 주인이 아닌 자가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이니 도둑이 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주식회사가 건강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사에 대한 소유권을 참칭하는 자들을 추방하고 경영권에 관한 합리적인 규칙을 정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 


242쪽

노동자 집단 전체의 기업경영에 대한 온전한 참여가 아니라 부분적인 참여와 영향력은 반드시 전체 노동자들의 일부에게만 적용되는 특권이 되어버리고 모든 예외적 특권이 그렇듯이 우리사주 조합의 특권도 자칫하면 부패를 불러오게 되는 것이다. 



2012년에 읽은 가장 기억에 남는 책 -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김상봉, 꾸리에, 2012


다른 좋은 책들도 많았지만 딱 한 권을 뽑으라면 나는 단연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를 꼽겠다. 

이 책의 주장은 아주 단순하다. 


주식회사의 경영권은 노동자에게 돌려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률 조항에 하나만 추가하면 된다. '주식회사의 이사는 종업원 총회에서 선임한다.'


이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법적으로 철학적으로 썰을 푼 것이 이 책이다. 


이론적인 책이지만 그리 어렵지는 않다. 다만 법 용어나 철학 용어들이 조금 생소하긴 하다. 이 책이 아주 신선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내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회사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어 활동하면서 회사한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경영권은 회사의 고유 권한"이라는 말이었다. 경영권은 무슨 전가의 보도였다. 경영과 아무 관련 없는 사안까지도 대표이사 맘대로 정하면서 경영권이라고 우겨댔다.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사안에 노동자들의 의견은 하나도 참고되지 않아도, 경영권은 법이 정한 회사의 고유 권한이라며 아무 문제 없다고 했다. (윤구병 대표이사는 철학 책을 한 권 준비한다고 알고 있는데, 농부철학자라는 타이틀 버리고 '사장님 철학자'라는 이름으로 자본주의 철학을 쓰는 게 옳다.)


확실히 윤구병은 경영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경영자로 잔뼈가 굵은 사람도 아니었지만, 본능적으로 경영자들의 철학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경영권은 경영자의 고유 권한'이다. 노동조합이 대표이사를 견제하거나 감시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경영권'을 흔든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도무지 방법을 모르겠었다. 방법은커녕 어떤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는 거였다. 


그때 이 책을 알게 되고 읽었다. 우선 속이 다 시원했다. 김상봉 교수는 논리정연했고 일목요연했다. 물론 안다. 이 논리가 회사와 대화할 때는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논리는, 적어도 상대방이 나와 대화를 하려고 할 때 의미가 있는 법. 김상봉 교수의 생각이 아무리 옳더라도 현실에선 의미가 있을 수 없다. 회사 경영진들이 경영권을 그냥 내어 줄 리는 만무하기 때문에. 그래서 김상봉 교수도  개별 기업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상법에 한 구절을 넣자고 제안하는 거라 생각한다. 


이 책이 이론서로서, 현실에서 과연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한계가 분명 있지만, 이 책의 성과는 아주 명확하고 중요하다. 경영자들이 자신의 고유 권한이라고 생각하는 경영권, 그 철옹성을 반박한 책이기 때문이다. 아주 민감한 부분을 건드렸다. 


실제로 보리 노동조합에서 노조 창립 2주년 행사로 이 책을 가지고 김상봉 강연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윤구병 대표이사는 김상봉 교수한테 안부를 전해달라며, 보리는 이미 노동자들의 경영참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단 말을 전해달라 했다. 보리 노동자들이 경영 참여를 하고 있다는 말은, 운영위원회에 노동조합 조합원인 부장 몇명이 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그런데 불과 1년 전, 단협에서 사측과 약속한대로 노동조합이 운영위원회를 참관하겠다고 하자, 운영위원회는 경영을 논하는 자리로 경영권은 경영자의 고유권한이니 노동조합이 참여할 권리가 없다며 자기들이 한 약속까지 져 버렸던 윤구병 대표이사가 아니었던가. 확실히 경영권이 뜨거운 감자인가보다. 


혹자는 노동자 경영권은 결국 자본주의를 공고하게 할 뿐이라고 비판하던데, 어차피 우리 삶의 형식이 자본주의 아닌가. 자본주의를 1%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서는 회사에 임금노동자로 고용되면 안 될 거다. 


이 책이 그리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한 거 같다. 어쩌면 김상봉 교수의 상상력이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리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고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물론 김상봉 교수의 방법론에는 오류나 헛점이 있을 수 있지만, 이 책이 가지는 의미는 그런 오류들을 사소한 것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이제 경영권을 노동자들에게 돌려줘야 할 때이다. 물론 그냥은 안 돌려주겠지. 그렇담 노동자들이 되찾아와야 할 때이다. 


 


 




히스토리아 - 주경철의 역사 에세이
히스토리아
주경철, 산처럼, 2012

150쪽

헬렌 켈러가 사회주의에 기울게 된 것은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맹인이 전 인구에 골고루 분포된 것이 아니라 하층 계급에 몰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가난한 사람들은 안전사고를 더 많이 당하는 데다가 적절한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해서 맹인이 되는 비율이 훨씬 높았으며, 또 많은 빈민 여성들이 매춘으로 내몰려서 매독에 걸려 시력을 잃기도 했다. 계급제도는 시각 장애 비율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인간의 삶에 결정적이라는 것이 그녀가 내린 결론이었다. 


->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에서 문제를 찾은 헬렌 켈러





9월이여, 오라 - 아룬다티 로이 에세이집

9월이여, 오라 - 아룬다티 로이 에세이집

아룬다티 로을 행이 지음, 녹색평론사, 2004년


<작가와 세계화>

26쪽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그 국민을 향해 선전포고도 없는 전쟁을 거는 나라에서 작가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성가신 책무를 걸머지는 일입니다. 


-> 여기서 다른 무엇보다도 국가 폭력을 전쟁이라고 표현한 것이 참 흥미롭다. 


31쪽

이런 새로운 유혹이 폭력과 억압보다도 훨씬 더 효과적으로 우리를 침묵시킬 수 있다는 매우 현실적인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아마도 언론자유가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과연 진정한 언론자유가 있습니까?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말이 '팔리지' 않을 때에도, 우리는 말을 할까요?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모두가 '팔리는 것들'을 찾는 데 열심이지 않을까요? 작가는 결국 궁중 어릿광대로 끝나지 않을까요? 아니면 우리의 CEO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시중드는 유능한 21세기판 환관이 되지 않을까요? 버릇없이 굴지만 상냥하게, 외설스러울지 모르지만 위험하지는 않게 말입니다. 


34쪽

신중함과 분별있는 태도라는 것이 기식 비열함을 가리키는 완곡한 표현이었음은 인류역사에서 흔히 보았던 일입니다. 조심성이 실제 비겁함이 되고, 용의주도함이 기실은 일종의 아첨이 될 때 말입니다.


44쪽

중요한 것은, 오늘날 인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문제'가 아니고, 우리들 중 일부가 제기하고 있는 쟁점들은 '원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것들은 나라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엄청난 정치적 사회적 격변입니다. 이런 사태에 누군가 관여하게 되는 것은 그가 작가나 활동가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관여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 상황에 대하여 글을 쓰는 것은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문제들에 대한 공적 논쟁의 비전문화야말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전문가'들에게서 우리의 미래를 다시 낚아채와야 할 때입니다. 공적 문재를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인 언어로 질문하고, 그에 대한 대답을 또한 일상적인 언어로 하라고 요구할 때입니다. 


53쪽

우리가 찾아내야 하고, 갈고 닦아 찬란히 빛나는 것으로 완성시킬 필요가 있는 것은 새로운 종류의 정치입니다. 그것은 지배의 정치가 아니라 저항의 정치입니다. 그것은 반대의 정치, 책임질 것을 요구하는 정치, 속도를 늦추는 정치, 세계 전역의 사람들과 손을 맞잡고 명백한 파괴를 막는 정치입니다.


64쪽

탈레반 정부가 뉴욕시를 폭격하면서 줄곧 폭격의 실제 목표물은 미국 정부와 그 정책들이라고 말한다고 상상해보자. 그리고 폭격을 하는 사이사이 탈레반이 아프간 국기를 꽂은 난과 케밥이 들어있는 봉지를 몇천개 투하했다고 가정해보자, 뉴욕의 선량한 사람들이 아프간 정부를 용서할 마음이 생길까? 그들이 굶주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식량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그것을 먹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그들이 그 수모와 그 깔보는 태도를 잊을 수 있을까? 루디 줄리아니 뉴욕시장은 사우디 왕자가 준 선물 1,000만달러를 되돌려 보냈다. 왜냐하면 그 선물이 미국의 중동 정책에 대한 우정어린 충고 몇마디와 함께 전해졌기 떄문이다. 자존심은 부자들만 누릴 수 있는 사치인가?


74쪽

국기(國旗)라는 것은 정부가 처음에는 국민들을 바보로 만드는 데 사용하고, 그 다음에는 죽은 자들을 위한 수의(壽衣)로 사용하는 색깔 있는 천 조각입니다. 


87쪽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승리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국가 없는 민족이 국가를 선포할 떄, 그것은 어떤 국가가 될까요? 그 국가의 깃발 밑에서 어떤 끔찍한 일이 자행될까요? 우리가 싸워 얻어야 할 것은 하나의 분리된 국가일까요, 아니면 종족이나 종교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존엄하게 살 수 있는 권리일까요?


96쪽

오늘날 '세계화'는 가난한 국가에서 인기없는 구조개혁을 밀어붙이고, 반란을 잠재우기 위해서, 충성스럽고, 부패하고, 가급적 권위주의적인 정부들로 구성된 국제적 연합체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세계화'는 정의를 실현하는 척하는 법원을 필요로 합니다. '세계화'는 자유로운 척하는 언론을 필요로 합니다. '셰계화'는 핵무기, 상비군, 보다 엄격한 이민법, 삼엄한 해안경비를 필요로 합니다. 왜냐하면 세계호란 오직 돈과 상품과 특허와 서비스에 관한 것이지, 결코 사람들의 자유로운 이동이나 인권존중에 관한 것도, 인종차별이나 화학 및 핵무기, 또는 온실효과와 기후변화, 또는 정의에 관한 국제적 협약에 관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화길히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거짓말 잔치라고?

못 볼 걸 봐 버렸다. 

강연 제목이 거짓말 잔치란다. 박근혜의 거짓말과 윤구병의 거짓말에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라고 묻는데, 내가 보기엔 별 차이가 없어. 차이가 있다면 가진 권력이 크기가 달라서, 악행이 미치는 범위와 영향력이 다를 뿐이지. 

그런데 가히 틀린 강연 제목은 아니야. 거짓말을 많이 하긴 하잖아. 그 사람이 했던 거짓말 가운데 내가 아는 것만 추려도 책 한 권 나오겠다. 


일단 농사 안 짓는데 농사꾼이라고 하는 것부터가 거짓말이지. 농부철학자가 아니라 사장님이 자기 정체성인데 곧 죽어도 농사꾼이라고 하잖아. 


그리고 자기는 스스로 사장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고, 노동자라고 생각한다는데 그것도 거짓말이지. 어느 노동자가 자기 맘에 안 든다고 다른 노동자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해서 해고를 논할 수 있을까. 어느 노동자가 회사 점심 식단에서부터 직원들 부서 이동까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을까.


자기 회사엔 비정규직이 없다는 것도 거짓말이지. 비정규직 있는 부서를 아예 다른 회사로 만들어버려서 고용을 더 불안하게 해 놓고 비정규직 없다고 자랑하면 안 되지. 


자기는 평생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을 눈 밖에 둔 적이 없다는 것도 거짓말이지. 아니 그건 참말일지도. 다만 자기 회사 노동자들이 권리를 주장하면 그것만은 철저히 묵살했을 뿐 회사 밖에서는 그랬는지도 모를일이지. 


6시간제 하는데 노사가 1년 동안 공부하고 토론 했다는 것도 거짓말이지. 토론은커녕 억지로 잡은 토론회 자리엔 도망쳐서 안 오고 남겨진 우리끼리 이 쓸모없는 토론 할지 말지를 토론했지. 단 한 번도 대표이사랑 직원들이 6시간제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없었지. 


6시간제 이후로 스트레스 받는 직원이 없다는 것도 거짓말이지. 그랬음 내가 왜 회사 그만뒀겠냐. 


노사 갈등도 없다는 것도 거짓말이지. 첫번째 단협부터 6개월을 끌고도 결렬되어서 노동위원회 중재 들어갔는데...대체 나는 누구랑 싸운 거지? 유령이랑 싸웠던 건가? 아님 내가 유령이었나? 


이런 글이나 쓰고 있는 내가 너무 싫고 한심하고 서러운데... 그런데 가슴에 쌓인 게 너무 많나봐. 그렇다고 여기다 끄적여봤자 기분이 풀리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변하는 거 없는줄 알면서도... 게다가 내 구직활동은 더 어려워 질테고...


확실히 지금 나는 치유가 필요해. 그런데 그 치유는 위로나 토닥토닥으로 되지 않아.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 저 위선자들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했어야 치유될 수 있을 거야. 싸워야 했는데 싸우질 못했기 때문에 병이 든 거야. 그러니까 아직도 거짓말을 하고 다니는 거고.


어제 국회 앞에서 100배 하러 갔는데, 한 분이 내게 물었어. 그렇게 좋은 직장을 왜 그만뒀냐고. 왜 좋은 직장이라고 생각하냐니까 4시에 끝나지 않냐고. 시간이 없어서 제대로 대답을 못 해줬는데, 이렇게 대답할 걸 그랬어. 감옥이, 4시면 퇴근하는 감옥이 있다면, 게다가 월급도 따박따박 나온다면, 그 감옥에 있으면 행복하겠냐고. 



금서, 시대를 읽다

금서, 시대를 읽다

백승종, 산처럼, 2012년



53쪽

평민지식인들은 『정감록』의 이름으로 뭉치고 탄압받고 헤어지기를 되풀이하면서 조직의 기술을 연마했고, 비밀결사의 운영방법을 터득하게 됐어요. 그들은 종교운동이 곧 정치운동임을 체험했어요. 조선과 같은 폐쇄적인 사회에서는 정치운동도 종교적 색깔을 덧씌워 시작할 때 가장 성공적이라는 사실도 그들은 학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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