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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죄인이 되는가'에 해당하는 글(1)
2015.09.11   죄를 지은 사람이 감옥에 가는 게 아니라, 감옥에 간 사람이 죄인이 된다 1


죄를 지은 사람이 감옥에 가는 게 아니라, 감옥에 간 사람이 죄인이 된다

지금은 파주에 살지만 병역거부를 했을 당시에는 부천에 살았다. 그래서 관할 구치소인 인천구치소에 수감되었다. 2일 동안 신입방을 거치고 들어간 신입방의 봉사원(방장)은 인천 토박이 아저씨였고 내 또래로는 나보다 3살 많은 사람과 대여섯살 어린 사람이 있었다. 서른 살 먹은 형은 가스 불다가 들어온 사람이었는데 왜 들어왔는지 말하기를 창피해했다. 가스는 뽀다구가 안 난다는 거였다. 내 생각에는 폭력이나 살인, 사기 이런 것보다 남에게 해끼치는 일이 덜한 거니 더 부끄러워할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는 창피해했다. 

그 형을 보고 있자니 3년전 영등포 경찰서 유치장에서 만난 20대 초반의 노랑머리가 떠오른다. 노랑머리는 발음을 살짝 더듬고 발을 절었는데 자기 말로는 본드를 너무 많이해서 그렇다고 했다. 오토바이를 훔쳤는데 본드하고 있다가 쫓아온 경찰에게 잡히는 바람에 유치장에 왔다고 한다. 

청주교도소 미결방에서 만난 어떤 아저씨는 향사범(마약)이었다. 원래 향사범들은 다른 재소자들과 같은 방에 두지 않는데 그 아저씨가 왜 미결방에 다른 재소자들과 같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 아저씨는 자기 친구에게 속아 자기도 모르게 마약 운반을 하다가 잡혔다고 했다.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눴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보안과 소지로 뽑혀 갈때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는 그 아저씨한테 네루다 시집을 주고 왔다. 멋드러진 양장본이었는데, 그 아저씨가 갖고 싶어하는 눈치를 여러번 보냈었다. 


감옥에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죄를 지은 사람이 감옥에 오는 게 아니라 감옥에 온 사람이 죄인이 된다' 

감옥 안에는 정말 죄지은 사람도 있지만 누명을 쓴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법적으로는 전과자지만 과연 우리가 그에게 범죄자라고 손가락질 하는 게 합당한가? 법적으로는 죄가 되지만 내 상식으로는 이 사람이 세상에 어떤 피해를 끼쳤는지 알 수 없는 사람도 있었다. 예를 들면 파업노동자들, 혹은 비폭력직접행동을 펼치다 연행되는 평화활동가들이 범죄자인가? 병역거부자는 명백하게 현행법으로는 범법자이지만 다른 사람을 죽이는 훈련을 거부하는 양심을 과연 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정말 큰 죄를 지은 사람들은 오히려 감옥에 오지 않았다. 그들은 누리끼리한 기결복 대신 말끔한 정장을 입고 있었고 철창 안이 아니라 텔레비전 안에 있었다. 우리 사회 범죄를 규정하는 법이라는 게 가난한 사람들이 죄인이 되기 쉬운 구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교도소 안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불공평한 법의 적용마저도 심하게 왜곡되어 적용되고 있었다. 

가스를 마신 그 형은 당시 재판에서 실형을 면했을까? 아니면 6개월 정도를 받아 재판 받느라 구치소에서 머무른 시간으로 다 차감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김무성의 사위처럼 집행유예를 받진 못했을 거 같다.

역시나 죄 지은 사람이 감옥 가는 게 아니라 감옥에 간 사람이 죄인이 된다. 

나는 사위가 집행유예를 받은 것에 대해서는 도의적인 책임이 김무성에게 있다고 생각하지만(물론 직접 사주한 일이라면 직접적인 책임이 있겠지만 지금 정황을 보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사위가 마약 한 것 자체를 김무성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병역거부 한 것을 울 아빠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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