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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도시락 반찬'에 해당하는 글(1)
2015.10.05   콩장 반찬


콩장 반찬

콩장, 두부부침, 감자볶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락 반찬 3총사다. 엄마는 음식 솜씨가 좋은 편이어서 엄마가 싸준 도시락 반찬은 대체로 맛있는 편이었는데, 나는 그 가운데서도 저 세 가지를 가장 좋아했다. (물론 우리 엄마 기억은 다를 수도 있다. 돈까스 제육볶음 따위를 가장 좋아했다고 기억하실지도 모른다.) 이 반찬들은 지금도 무척 좋아하는 반찬인데, 혼자 살면서도 두부부침과 감자볶음은 자주 해 먹었다.그에 비해 콩장은 만드는 과정이 상대적으로 조금 번거로워 한 번도 직접 해본적은 없다. 


사실 도시락 싸들고 다니던 시절 이 세 가지 가운데 가장 좋았던 건 콩장이다. 맛 때문이 아니라, 경제성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면, 콩장은 다른 반찬에 비해 음식의 부피가 작고 간이 배어 있다. 반찬통 가득 두부를 채워도, 몇 숟가락 반찬이 안 된다. 감자볶음은 케챱을 뿌리기는 했지만 슴슴해서 한 숟가락에 많은 양을 반찬으로 먹게 된다. 그에 비해 콩장은 도시락 먹다가 반찬이 부족할 거 같으면 밥 한 숟가락에 콩 한 알만 먹어도 되기 때문에 밥과 반찬의 비율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는 나에게 안성맞춤인 반찬이었다. 


우리 엄마가 콩장이 가장 맛있긴 하지만, 나는 대체로 어디서 먹는 콩장이든 다 좋아하는 편이다. 그 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콩장이 있다. 바로 수원구치소에서 먹은 콩장이다. 


병역거부로 수감되었던 나는, 수감되기 직전 평택 대추리 싸움을 하다가 평택 경찰서 앞에서 연행된 일이 있다. 그 재판을 받으러 군산교도소에서 수원구치소로 옮겨와 재판을 받는 6개월 가량을 수원구치소에서 살았다. 병역거부자들은 일반적으로 기타 잡범으로 분류되는데,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로 재판을 받아서인지, 수원구치소는 내게 공안수들에게 주는 갈색 표찰을 주었다. 감옥들은 대체로 공간이 부족해서 아무나 독방을 주지 않는다. 빽이나 권력이 있거나 공안수처럼 요주의 인물이어야 독방을 쓸 수 있다. 


평택미군기지 확장이전 반대 집회에 참가한 것이 공안수가 되어야 할 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모처럼 온 공안수 딱지를 그냥 보내긴 아까웠다. 당시 나는 하루가 멀다하고 반복되는 텔레비전 소리와 방 사람들을 미워하는 내 자신에 대한 열패감으로 무척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텔레비전과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탈출할 기회를 흘려보내지 않고 독방 신청을 했다. 겨울도 지났으니 독방이라해도 아주 춥지는 않을 거 같았다. 


독방에 오고 보니 모든 것이 다 좋았는데 한 가지 밥 먹을 반찬 보관이 아쉬웠다. 당시에는 식판에 밥과 국, 김치를 포함한 반찬이 세 가지가 나왔다. 영치금으로 멸치볶음이나 김, 마늘짱아치 들을 사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혼자서 밥을 먹다보니 멸치볶음이나 마늘짱아치를 사서 먹으한 끼에 그걸 다 먹을 수가 없었다. 남겨뒀다가 나중에 먹어도 되지만, 굳이 사먹지 않는 쪽을 택하게 되었다. 그러나보니 반찬 가짓수가 너무 없었다. 어쩌다가 돈까스나 햄 같은 것이라도 나오면 채식을 하는 나는 김치와 나머지 반찬 하나 만으로 먹어야 하기 일쑤였다. 

그때 내가 가장 좋아하던 반찬이 바로 콩장이었다. 콩장이 나오는 날이면 음식을 배식하는 소지한테 특별히 부탁해서 콩장을 한 그릇 가득 받는다. 고기 반찬 나올 때 내 몫을 소지한테 주곤 했으니 그 정도 부탁은 흔쾌히 들어줬다. 국 그릇에 하나 가득 받은 콩장은 못해도 하루 세 끼 반찬이 되었다. 마지막 끼니쯤 되면 냉장고도 없는 감옥에서 그냥 뚜껑만 대충 다른 그릇으로 덮어 보관한 콩장이 쉬려는 기미가 보인다. 그럴 때면 아예 콩장에 밥을 비벼 이게 콩밥인지 밥콩인지 모를 정도가 된 밥을 먹곤 했다. 

달짝지근한 콩을 한입 씹으면 고소한 맛이 밥에 배어든다. 살 빼려고 과자나 다른 군것질거리를 다 끊고 있을 때여서, 달달하고 고소한 콩장은 단백질 공급원일뿐만 아니라 좋은 주전부리기도 했다. 수원구치소는 내가 지낸 네 군데 감옥 가운데서 음식이 가장 형편 없는 곳이었는데도 그 콩장만큼은 맛있게 먹었다. 물론 객관적으로 평을 하자면, 너무 딱딱하게 조렸고, 단 맛은 조금 약한데, 그게 담백한 느낌이라기보다는 꼭 필요한 맛이 부족한 거여서 다른 곳에서 먹는 콩장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수원구치소에서 나오는 다른 반찬에 비하자면 군계일학이었고, 마치 다른 팀에 가면 중심타선에 들지 못할 성적이지만 꼴찌팀 4번타자로 고군분투하는 그런 맛으로, 내가 먹은 콩장들 가운데 내 기억에 가장 깊게 남아 있다. 


오늘 점심, 엄마가 싸준 콩장에 도시락을 먹다 문득 떠오른 수원구치소의 콩장 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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