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김상봉, 꾸리에, 2012
다른 좋은 책들도 많았지만 딱 한 권을 뽑으라면 나는 단연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를 꼽겠다.
이 책의 주장은 아주 단순하다.
주식회사의 경영권은 노동자에게 돌려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률 조항에 하나만 추가하면 된다. '주식회사의 이사는 종업원 총회에서 선임한다.'
이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법적으로 철학적으로 썰을 푼 것이 이 책이다.
이론적인 책이지만 그리 어렵지는 않다. 다만 법 용어나 철학 용어들이 조금 생소하긴 하다. 이 책이 아주 신선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내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회사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어 활동하면서 회사한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경영권은 회사의 고유 권한"이라는 말이었다. 경영권은 무슨 전가의 보도였다. 경영과 아무 관련 없는 사안까지도 대표이사 맘대로 정하면서 경영권이라고 우겨댔다.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사안에 노동자들의 의견은 하나도 참고되지 않아도, 경영권은 법이 정한 회사의 고유 권한이라며 아무 문제 없다고 했다. (윤구병 대표이사는 철학 책을 한 권 준비한다고 알고 있는데, 농부철학자라는 타이틀 버리고 '사장님 철학자'라는 이름으로 자본주의 철학을 쓰는 게 옳다.)
확실히 윤구병은 경영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경영자로 잔뼈가 굵은 사람도 아니었지만, 본능적으로 경영자들의 철학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경영권은 경영자의 고유 권한'이다. 노동조합이 대표이사를 견제하거나 감시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경영권'을 흔든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도무지 방법을 모르겠었다. 방법은커녕 어떤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는 거였다.
그때 이 책을 알게 되고 읽었다. 우선 속이 다 시원했다. 김상봉 교수는 논리정연했고 일목요연했다. 물론 안다. 이 논리가 회사와 대화할 때는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논리는, 적어도 상대방이 나와 대화를 하려고 할 때 의미가 있는 법. 김상봉 교수의 생각이 아무리 옳더라도 현실에선 의미가 있을 수 없다. 회사 경영진들이 경영권을 그냥 내어 줄 리는 만무하기 때문에. 그래서 김상봉 교수도 개별 기업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상법에 한 구절을 넣자고 제안하는 거라 생각한다.
이 책이 이론서로서, 현실에서 과연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한계가 분명 있지만, 이 책의 성과는 아주 명확하고 중요하다. 경영자들이 자신의 고유 권한이라고 생각하는 경영권, 그 철옹성을 반박한 책이기 때문이다. 아주 민감한 부분을 건드렸다.
실제로 보리 노동조합에서 노조 창립 2주년 행사로 이 책을 가지고 김상봉 강연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윤구병 대표이사는 김상봉 교수한테 안부를 전해달라며, 보리는 이미 노동자들의 경영참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단 말을 전해달라 했다. 보리 노동자들이 경영 참여를 하고 있다는 말은, 운영위원회에 노동조합 조합원인 부장 몇명이 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그런데 불과 1년 전, 단협에서 사측과 약속한대로 노동조합이 운영위원회를 참관하겠다고 하자, 운영위원회는 경영을 논하는 자리로 경영권은 경영자의 고유권한이니 노동조합이 참여할 권리가 없다며 자기들이 한 약속까지 져 버렸던 윤구병 대표이사가 아니었던가. 확실히 경영권이 뜨거운 감자인가보다.
혹자는 노동자 경영권은 결국 자본주의를 공고하게 할 뿐이라고 비판하던데, 어차피 우리 삶의 형식이 자본주의 아닌가. 자본주의를 1%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서는 회사에 임금노동자로 고용되면 안 될 거다.
이 책이 그리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한 거 같다. 어쩌면 김상봉 교수의 상상력이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리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고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물론 김상봉 교수의 방법론에는 오류나 헛점이 있을 수 있지만, 이 책이 가지는 의미는 그런 오류들을 사소한 것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이제 경영권을 노동자들에게 돌려줘야 할 때이다. 물론 그냥은 안 돌려주겠지. 그렇담 노동자들이 되찾아와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