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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음식'에 해당하는 글(1)
2015.10.10   번데기가 좋아


번데기가 좋아

헤이즐넛과 델리만쥬와 번데기. 내 코를 가장 강력하게 유혹하는 음식 세 가지다. 헤이즐넛과 델리만쥬는 막상 입에 넣었을 때 맛이 코를 배반한다. 헤이즐넛의 향긋함과 델리만쥬의 달콤한은 코에만 머무를 뿐이다. 반면 번데기는 최고로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입에 넣어도 맛있는 음식이다. 번데기보다 더 맛있는 음식은 많이 있겠지만, 그 음식 가운데 어떤 것들도 번데기보다 내 침샘을 자극하지 못한다. 물론 번데기의 생김새나 여타 이유 때문에 번데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내 의견에 동감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번데기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마 서울 방학동에서 살았을 때 같다. 엄마가 시장 갈 때 종종 따라가곤 했는데, 어린 아이의 발걸음으로는 제법 먼 거리에 위치한 시장이었다. 물론 지금 다시 걷는다면 엎드리면 코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일 수도 있다. 아무튼 당시 내겐 꽤 먼 거리였으니, 엄마는 나를 데리고 다니려면 내가 칭얼대지 않게 무언가를 입에 물려야 했을 것이다. 그 단골 메뉴가 번데기였다. 지금은 번데기를 주로 종이컵에 파는데, 당시에는 종이로 원뿔을 말아서 거기다 번데기를 담아 줬다. 그게 100원이었던 거 같다. 
시장 초입 쪽에 번데기를 파는 노점이 두 군데 있었다. 번데기 맛은 대동소이했는데, 한 쪽에서는 번데기를 사면 굴뚝 모양의 뻥튀기를 두 개, 검지와 중지 손가락에 끼워줬다. 손가락에 끼워준 뻥튀기를 뺴 먹는 재미에 나는 늘 그 집에서만 번데기를 샀다.

2002년 초겨울, 나는 총학생회선거에 후보로 나섰다가 우리 학교 역대 최다표차로 떨어지고 바로 그해 대통령 선거에서 출마한 사회당 김영규 후보 선거운동원이 되어 전국을 돌아다녔다. 전라도를 돌 때였다. 새벽에 일어나 목포의 삼호 조선소 앞에서 출근하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선거 운동을 한 뒤, 무안으로 올라갔다. 점심 먹기 전 어느 장터에서 선거 유세가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바닷 바람을 맞으며 선거운동을 했던 터라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무안 장터에 도착해서도 바람은 여전히 매서웠고 몸은 좀체로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달달달 떨면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뒤에서 누군가 우리를 불렀다. 돌아보니 번데기를 파는 아저씨였다. 
"학생들 춥지. 이거 하나씩 먹고들 해. 고생이 많네."
번데기를 세 컵이나 떠서 주시는 게 아닌가. 나이 많은 선배들은 늘상 92년 백기완 선본 때 이야기를 하며 이름도 모르는 시민들이 이러저러한 지원과 도움을 줬다는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았고, 그 이야기를 지겹도록 들어온 우리는 전국을 돌며 우리끼리는 신났지만 사람들의 무관심이 차곡차곡 누적되어 쓸쓸하고 씁쓸한 마음이 제법 쌓였을 때였다. 그 번데기가 우리를 응원하는 시민의 마음인 것처럼 느껴져서 몸보다 마음이 먼저 녹았다. 따뜻한 번데기를 한움큼 먹고 나니 손끝 발끝이 따뜻한 온기로 저릿한 느낌이었고, 그 아저씨의 연대에 감동한 나머지 눈물샘이 시큰거렸다. 잘 먹었다고 인사를 드리고 가려는데, 아저씨가 우리를 보며 환히 웃으시며 이렇게 말했다. 
"응~ 원래 한 컵에 2000원인데, 3컵에 5000원만 받을게."
이게 뭐지? 우리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서로를 쳐다봤지만, 누구도 적절한 대꾸를 하지 못한 채 멀뚱거리기만 했다. 당황해하는 우리를 보더니 아저씨는 마치 결정타를 날리는 맹수마냥 한마디를 더 보탰다.
"아니, 이 사람들이, 정치하겠다는 양반들이 시장에서 음식 사먹고 돈도 안 내려고 그래?"
이번 목소리는 좀 더 컸고, 우리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모으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울며겨자 먹기로 주머니를 뒤져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지폐를 모아 아저씨에게 줄 수밖에 없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쓰디쓴 번데기였고, 아마 앞으로도 그보다 쓴 번데기는 먹을 일이 없을 거 같다.

한편 번데기 먹기의 위기 상황도 있었다. 대학 졸업하고 나서 전쟁없는세상 활동을 하면서 나는 고기를 끊기로 결심했다. 그래도 고기를 제법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해도 크게 미련이 남지는 않았다. 다만 번데기를 먹지 못하게 되는 건 너무 서러운 일이었다. 고기를 끊고 번데기를 못 먹어 낙담하고 있는 내게 어느 친구가 말해줬다. "야 어차피 너 비건은 아니잖아. 생선도 먹고, 유제품도 다 먹잖아. 번데기는 포유류나 조류가 아냐. 어류 먹는데 곤충 못 먹을 거 없잖아." 듣고 보니 그랬다. 그 친구 덕분에 번데기를 끊지 않아도 되는 일이 너무나 고마워 그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각고의 노력으로 은혜는 잊지 않았는데, 문제는 그 친구가 누구였는지를 잊어버렸다.

어제 소래포구 가서 배터지게 먹고 풀빵까지 사 먹느라, 번데기를 보고도 먹을 수가 없었던 것이 번데기에게 못내 미안해서, 내 인생의 번데기들을 한번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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