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인기 있는 말 가운데 하나는 경제민주화였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내용은 많이 다르지만, 모든 후보들이 자기가 경제민주화의 적임자라고 이야기했다. 새누리당조차 경제민주화를 내세웠으니, 가히 경제민주화 열풍이라 하겠는데, 다시 말하면 그만큼 노동자들이 살기 어려운 나라라는 말이다.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공약들은 가장 큰 쟁점이 되었던 순환출자나 출자총액제한 같이 재벌을 어떤 방식으로 규제할 것이냐 하는 것들과 최저임금과 비정규직 차별 해소처럼 사회 약자층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관한 것들이었다. 이 모든 공약들이 잘 지켜지면 좋겠지만, 나는 각 후보들의 경제민주화 공약들을 보면서 약간 아쉬움을 느꼈다.
이건 경제민주화 자체에 대한 아쉬움이라기보다는 노동자 정치 실종에 대한 아쉬움이기도 한데, 온갖 좋은 공약들을 보면서 뭔가 빠진 거처럼 씁쓸했던 까닭은 그 좋은 공약들이 노동자를 ‘위한’ 공약이기 때문이다. 물론 국가차원에서 전체 경제의 큰 그림을 그리는 것도 중요하고, 많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보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다 죽는 나라에서 노동자를 위한 공약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판만 깔아주면 굳이 정치인들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노동자들이 알아서 사회 전체의 경제민주화나 한 회사 안에서 민주적인 경영이 되도록 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경제민주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이야기 되어야 할 것이 노동자들의 경영참여라고 생각한다.
노동자들의 경영참여에 대해 아주 재미있는 주장을 하는 책이 있다. 김상봉 교수가 쓴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이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2012년 읽은 책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책을 꼽겠다.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에서 김상봉 교수가 주장하는 바는 아주 단순 명료하다. ‘주식회사는 원래 주인이 없는 기업이므로 얼마든지 노동자들 또는 종업원들이 경영권의 주체일 수 있으며 스스로 사장을 선출할 수 있다’며 이를 위해 ‘주식회사의 이사는 종업원 총회에서 선임한다’는 법 조항을 상법에 넣자고 이야기 한다. 이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주식회사의 소유권과 경영권에 대해 법적으로 철학적으로 검토하고 다른 나라 주식회사의 지배구조를 살펴보는 것이 책 내용이다. 이론을 주로 다룬 책이지만 그리 어렵지는 않다. 다만 법 용어나 철학 용어들이 조금 생소하긴 하다. 이 책이 아주 신선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내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나는 직원 30여명 정도 규모의 출판사에 다니며 노동조합 활동을 했었는데, 그때 대표이사 가장 많이 한 말이 “경영권은 경영자의 고유 권리”라는 말이었다. 대표이사는 경영을 해본적은커녕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모르고 적자인지 흑자인지도 모를 정도로 경영능력이 의심되었지만, 노사관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 무엇인지 자본가의 본능으로 알고 있었다. 그게 바로 경영권이었다. 단협을 하면서 복지는 양보해도, 임금은 양보해도 절대 양보하지 않는 것, 바로 경영권이었다. 노동조합이 경영권을 조금이라도 견제할라치면 아주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며 분위기를 급속히 냉각시켰다. ‘아 저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게 경영권이구나.’
회사가 절대 노동조합에 양보할 수 없다면, 바꿔 말하면 노동조합으로서는 그것을 취하는 것이 바로 노동자들이 일하기 좋은 회사가 되는 게 아니겠는가. 하지만 경영권에 대한 회사의 집착은 내 상상을 훌쩍 넘어섰다. ‘경영권’은 그야말로 회사에게 전가의 보도였다. 노동조합을 설득시키기 위한 논리나 논리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아니라, 거부할 수 없는 절대자의 말씀 같은 거였다.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크게 바뀌는 결정을 일방적으로 내려 노동조합이 항의를 해도 그 결정은 경영판단이며 경영권은 경영자의 고유 권리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회사 경영과는 아무 상관없는 문제들, 예를 들면 회사 식당에서 나오는 점심 식사 메뉴를 정하는 문제도 경영 판단을 하고 경영권은 침해당할 수 없다고 우기면 끝이었다. 대표이사가 휘두르는 경영권 앞에서 나는 촛불집회에서 끝내 넘지 못한 명박산성을 만난 기분이었다.
그때 이 책을 알게 되고 반갑게 읽었다. 속이 다 시원했다. 경영권은 경영자의 고유권한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대표이사에게 뭐라 반박할 수 없었는데(실제로 판례들에서 경영권은 경영자의 권리라고 판시하고 있다) 아주 강력한 우군을 만난 기분이었다.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만났을 때 이런 기분이 이랬겠지.
김상봉에 따르면 주식회사는 주인이 있을 수 없는 회사이다. 이 말부터 통쾌했다! 나조차도 회사의 주인은 노동자라고 외치면서도, 법적으로는 주주들이 주인이고, 현실적으로는 보통 창업자나 사장이 주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주식회사는 법인격(法人格)을 가진 법인인데, 인격은 곧 사람은 누구의 소유물일 수 없다는 것이 김상봉의 주장이다. 경영권 또한 마찬가지다. 기업을 개인이 사사로이 소유할 수 있다면 경영권은 소유권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니 경영권도 개인이 소유 할 수 있다고 하겠지만, 이미 말했듯이 주식회사는 누구의 소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 기업들은 가질 수 없는 주식회사의 소유권과 경영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가질 수 없는 것들이 태초부터 자기들 거였다고 거의 신앙에 가까운 믿음으로 가지고서 말이다.
김상봉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간다. 주식회사의 경영권이 누구의 소유도 될 수 없는 것이라면, 기업을 참된 의미의 생산 공동체로 만들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에게 경영권을 돌려주자고 한다. 그 방법으로 김상봉은 상법에 ‘주식회사의 이사는 조합원 총회에서 선임한다’는 조항을 넣자고 제안한다.
김상봉 교수는 독일과 미국, 일본의 주식회사 구조를 소개하면서 한국의 재벌 기업 지배구조와 비교하기도 한다. 이 내용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독일 사례였다. 역사적으로 협동조합에서 시작한 회사가 많은 독일은 아직도 그 전통이 남아있다고 한다. 노사 공동결정제도라는 것이 있어서 기업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기업의 이해당사자들 특히 노동자와 주주 그리고 은행이 공동으로 결정한다는 것이다. 김상봉의 표현에 따르면 “가장 놀라운 것은 해고에 관한 공동결정제도인데, 원칙적으로 종업원의 배치나 이전, 부서이동 그리고 해고는 작업장평의회의 동의를 필요한 한다”는 것이다.
사장님들이 보면 팔짝 뛸 내용이지만, 이 주장과 사례들이 너무 반가웠다. 정직원을 전제로 한 수습사원으로 뽑아놓고 맘에 안 들면 하루 아침에 잘라버리고, 정규직 직원들도 무슨 심시티 오락 하듯 부서를 이리 옮기고 몇 달 지나지 않아 저리 옮기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말이 아닌가. 우리에게 꿈같은 일들이 독일에선 이미 법으로 정해져 있다니.
물론 김상봉의 논리가 현실에선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을 알고 있다. 내가 겪은 바로는 회사를 설득할 수 있는 건 논리, 합리성 따위가 아니었다. 회사는 노동조합 힘이 약하면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것조차도 빼앗으려 했고, 노동조합이 힘을 내면 근로기준법보다 좋은 걸 요구해도 받아들였다. 결국 노사 관계를 풀어가는 것은 노동조합이 얼마나 힘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있었다. 노동조합이 약하면,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아무리 완벽한 논리라도 꿰지 못한 구슬 서말과 마찬가지일 뿐이다. 대법원에서 복직시키라고 판결을 내려도 무시하는 게 대한민국 회사들 아닌가. 노동조합과 맺은 단체협약을 휴지조각보다도 더 무시하는 경우가 허다하니 말이다.
김상봉의 주장은 뜬구름 잡는 그저 좋은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 주식회사의 이사를 노동자들이 뽑는다니? 그게 가능하겠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하지만 30년 전만 해도 대통령을 국민들이 뽑는다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였다. 김상봉 교수의 주장은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아주 중요하고 현실적인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보수정당 대통령 후보까지도 부르짖을 정도로 경제민주화가 중요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어느 정치 세력이 정권을 잡든 흔들리지 않는 경제민주화를 이루려면 노동자들이 자기 일터의 진정한 주인이 되어야 한다. 경제민주화가 단순히 국가 차원에서 부의 재분배나 산업구조에서 재벌의 독점을 막는 것만 의미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생각해보자. MBC의 사장을 MBC 노조 조합원들이 뽑는다면, 혹은 한진중공업 사장을 한진 노동자들이 뽑는다면 어떨까? 김재철 같은 이가 사장이 되어 정권에 나팔수 노릇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노동자들이 뽑은 사장이 경영을 못해서 적자가 날 수도 있겠지만 경영 실패를 노동자들의 일방적인 희생인 정리해고로 극복하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노동자의 경영참여나, 노동자가 사장을 뽑는 것이 모든 일을 해결해 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노동자들이 사장의 시혜적인 조치만을 바라보거나 정치인들에게 기대지 않을 수 있다면, 노동자들 스스로가 자기들이 겪고 있는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회사 안팎에서 무언가를 해 볼 수 있다면,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노동 사안들이 실제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사장들은 절대로 경영권을 양보하려 하지 않을 거다. 자기 자리를 노동자들이 결정하게 두지 않을 거다. 그것은 그냥 얻어지지 않을 거다. 아마도 이 책 주장하는 것이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는 까닭은 사장들이 경영권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현실적인 판단이 우리들 머릿속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까지 상상하지 못했던 것, 혹은 전해 들어도 실현되기 어려울 거라고 여기는 것들을 더 많이 떠들 필요가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떠들 때,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일들이 시대의 상식이 되니까. 1970년대 살던 사람들에게 불가능했던 일,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뽑는 일 또한 지금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한 상식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열심히 떠들어야 겠다.
“주주에겐 배당금을, 노동자에겐 경영권을!”
-미디어스 기고글. 원래 내가 단 제목은 '경제민주화, 노동자들이 직접 사장님을 뽑을 때 가능하다'였음.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8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