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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 트레이닝'에 해당하는 글(2)
2013.02.10   비폭력이 무력하다고 여겨지는 순간
2013.02.07   평화와 노동의 만남에 대한 짧은 노트


비폭력이 무력하다고 여겨지는 순간

용역들이 쳐들어와도 저희들은 무기가 하나도 없잖아요. 사실 지회장님이 저희들에게 무기를 준비하지 말라고 그러더라고요. "무기를 절대 준비하지 말고 몸으로 대처해주새요"하고 부탁을 하더라고요. 지회장님의 우니락 무기를 안 들면 용역들도 무기를 휘두르지 않을 줄 알았나 봐요. 나중에 조합원들이 많이 다쳤을 때 지회장님이 많이 괴로워했어요. 저도 마찬가지였죠. 선봉대가 조합원들을 보호해야 하는데 못했으니까요. 맨몸으로 사수하다보니까 많이 다친 거죠. 만약 우리까지 무기를 들었으면 굉장히 큰 사고가 났을 것 같기도 해요. 지회장님이 판단은 잘한 것 같아요.
-<대한민국 나쁜 기업 보고서> '치유와 회복의 시간' 김신태 SJM 생산기술부 노동자

나는 운동의 철학으로써 뿐만 아니라, 효과적인 면에서도 물리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것보다 비폭력이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대게의 경우 폭력은 이길 수 있는 수단이 되지 못하며, 오히려 더 큰 피해를 초래하고, 운동이 고립되기 쉬워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 무력감이 치솟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 안다. 그것은 폭력을 안 썼기 때문이 아니다. 김신태 님 말처럼 무기를 들었으면 더 큰 사고가 났을 거라고 나도 그리 생각한다. 그리고 SJM 노동자들이 비폭력으로 저항했기 때문에, 컨택터스의 폭력이 더 부각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날 SJM 노동자들이 컨택터스 용역들의 폭력에 어떻게 다쳤는지 나도 사진으로 봤는데, 그걸 어떻게 막을 수는 없었을까? 이 생각이 너무나 간절하다. 그렇게 많이 다치고, 희생해야 한다면, 그 투쟁 방식이 옳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피할 수가 없다. 

물론 우리가 비폭력 트레이닝을 하는 까닭이 이런 상황 때문일 거라 생각은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인간 상식에 기반해서 행동하지 않는 것들을 보면, 우리에게 어떤 방법이 남아있는 건지 심각하게 고민이 된다. 

작년, 구럼비 폭파를 막기 위해 손에 손을 맞잡고 파이프로 손을 둘러 봉쇄 작전을 폈던 내 친구들. 경찰은 파이프 안에 뭐가 있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망치와 톱으로 파이프를 파괴했다.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누군가 크게 다쳤을 수도 있던 상황이었다. 

공권력, 혹은 용역이라 할지라도 폭력을 행사하는 개개인들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생각이 비폭력 운동의 바탕일텐데, 그걸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치들에게는 어떻게 맞서야 하는 건지...

아직 책을 읽는 중이지만, 대충 훑어보니 SJM은 잘 해결이 되고 회장이 공개 사과도 하고 노동자들도 공장으로 다들 돌아간 모양이다. 이는 분명 비폭력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노동자들이 무기를 들고 용역에 맞섰다면, 그날 더 크게 다치는 사람들도 많이 나왔을 거고, 회장이 사과하는 일도 요원했을 거 같다. 

하지만, 내가 SJM 노동조합 간부였다면, 얼굴이 함몰되고 입술이 찢긴 조합원들을 보고 있었다면, 나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떤 판단을 했을까?



평화와 노동의 만남에 대한 짧은 노트

나는 전쟁없는세상 활동을 하면서 비폭력트레이닝에 여러차례 참여했다. 지나고나서 드는 생각인데 비폭력트레이닝을 했던 것이 노동조합 활동에 도움이 크게 된 거 같다. 노동운동과 평화운동의 접점을 찾고 싶은 마음이 많은데, 운동을 바라보는 철학적인 관점과 방법론 모두에서 비폭력트레이닝이 노동운동에 시사하는 바가 많을 거 같다. 내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 해 보고 싶다. 


차이점

일단 차이점을 먼저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전쟁없는세상에서 했던 비폭력 트레이닝이나 외국의 트레이닝 사례들을 보더라도 모인 사람들은 어떤 하나의 목표나 의지에 대해 공감대가 큰 편이었다. 그렇기때문에 아주 구체적인 실천 방안까지 트레이닝에서 다룰 수가 있었다. 하지만 노동조합(노동운동이 꼭 노동조합운동만은 아니지만)은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다. 운동권이 아닌 사람이 대부분이고, 정치적으로든 철학적으로든 스펙트럼이 너무 넓다. 그래서 아주 구체적인 직접행동 계획을 일반적인 노동조합에서 비폭력트레이닝 통해 수립할 수 있을지는 솔직히 자신없다. 


비폭력트레이닝 적용지점

그래도 비폭력트레이닝이 노동조합에 굉장히 유용하다고 여기는데 그걸 하나하나 써 보자. 비폭력트레이닝도, 노동조합 활동도 온전히 내 경험을 통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니 내 이야기가 전부는 아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내 고민을 더 풍성하게 해 주면 좋겠다. 


-공략하지 말고 낙후시켜라

내가 생각하는 비폭력은 운동의 철학이다. 비폭력은 권력이 작동하는 구조에 일부가 되기를 거부함으로서 폭력을 바탕으로 유지되는 권력을 부정한다. 비폭력은 여러면에서 효과적인데 권력에 폭력으로 맞서지 않음으로, 권력이 얼마나 추악하고 폭력적인지 드러낸다. 이 지점에서 노동조합 활동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희진이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공략하지 말고 낙후 시키는 것"이 굉장히 효과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싸움이 필요한 순간에는 싸움을 하되 힘으로 이기려는 것보다는 상대방이 얼마나 부도덕하고 추악한 집단인지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것이다.


-권력은 무서워할 것이 아니다

나는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한 번도 대표이사의 권력이 무섭지 않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비폭력트레이닝에서 '권력 분석하기'를 한 덕이 크다. '권력 분석하기'는 우리가 맞서고자 하는 권력을 떠바치고 있는 것들이 무언지 알아보고, 그들 가운데 어떤 것들을 공략하는 것이 권력을 무너뜨리는데 좋을지 논의한다. 아무리 대단하고 막강해 보이는 권력도 사실 권력이 유지되게 하는 버팀목들이 있고, 그걸 하나씩 제거해 나가면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노동조합에서 이 '권력 분석하기'를 해 보면 좋겠다(근데 그 워크샵 이름이 권력분석하기가 맞나???) 그러면, 노동조합이 맞서는 권력이 대단하고 무소불위의 어떤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되면서 두려움을 떨칠 수 있고, 또 버팀목들 가운데 뭐를 먼저 공략할 건지 계획을 세우기도 좋을 거 같다. 


-가이드라인 만들기 

작년 강화도에서 했던 트레이닝에서 배운 건데, 직접행동을 하기 전에 함께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거다. 철학적인 이야기(우리는 비폭력을 원칙으로 한다, 같은)도 좋고, 아주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이야기(경찰이 오면 일단 행동을 중단한다, 같은)도 좋다.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할 때 위에서 내려온 지령에 따라 움직이는 게 익숙하지 스스로 자기 행동의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서로서로 가이드라인을 조율하는 연습이 많이 부족한 거 같다. 그래서 자발성에서 운동이 역동적이지 못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런 면에서 이 툴은 참 유용할 거 같다 .

노동조합에서 이걸 해 본다면, 쉽게 생각하면 파업이든 뭐든 행동에 돌입할 때 서로 의견도 다르고 생각도 다른 조합원들끼리 모두가 공감하는 가이드라인을 작성하는 데 유용할 거 같다. 그리고 꼭 그런 투쟁하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노동조합의 활동 방향이나 계획을 수립할 때도 적용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미련이 아직 많이 남았나보다. 내가 노동조합 활동할 때 이리 했으면 될 것을. 뭐 그때는 고민도 지금보다는 짧았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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