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쟁없는세상 활동을 하면서 비폭력트레이닝에 여러차례 참여했다. 지나고나서 드는 생각인데 비폭력트레이닝을 했던 것이 노동조합 활동에 도움이 크게 된 거 같다. 노동운동과 평화운동의 접점을 찾고 싶은 마음이 많은데, 운동을 바라보는 철학적인 관점과 방법론 모두에서 비폭력트레이닝이 노동운동에 시사하는 바가 많을 거 같다. 내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 해 보고 싶다.
차이점
일단 차이점을 먼저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전쟁없는세상에서 했던 비폭력 트레이닝이나 외국의 트레이닝 사례들을 보더라도 모인 사람들은 어떤 하나의 목표나 의지에 대해 공감대가 큰 편이었다. 그렇기때문에 아주 구체적인 실천 방안까지 트레이닝에서 다룰 수가 있었다. 하지만 노동조합(노동운동이 꼭 노동조합운동만은 아니지만)은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다. 운동권이 아닌 사람이 대부분이고, 정치적으로든 철학적으로든 스펙트럼이 너무 넓다. 그래서 아주 구체적인 직접행동 계획을 일반적인 노동조합에서 비폭력트레이닝 통해 수립할 수 있을지는 솔직히 자신없다.
비폭력트레이닝 적용지점
그래도 비폭력트레이닝이 노동조합에 굉장히 유용하다고 여기는데 그걸 하나하나 써 보자. 비폭력트레이닝도, 노동조합 활동도 온전히 내 경험을 통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니 내 이야기가 전부는 아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내 고민을 더 풍성하게 해 주면 좋겠다.
-공략하지 말고 낙후시켜라
내가 생각하는 비폭력은 운동의 철학이다. 비폭력은 권력이 작동하는 구조에 일부가 되기를 거부함으로서 폭력을 바탕으로 유지되는 권력을 부정한다. 비폭력은 여러면에서 효과적인데 권력에 폭력으로 맞서지 않음으로, 권력이 얼마나 추악하고 폭력적인지 드러낸다. 이 지점에서 노동조합 활동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희진이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공략하지 말고 낙후 시키는 것"이 굉장히 효과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싸움이 필요한 순간에는 싸움을 하되 힘으로 이기려는 것보다는 상대방이 얼마나 부도덕하고 추악한 집단인지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것이다.
-권력은 무서워할 것이 아니다
나는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한 번도 대표이사의 권력이 무섭지 않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비폭력트레이닝에서 '권력 분석하기'를 한 덕이 크다. '권력 분석하기'는 우리가 맞서고자 하는 권력을 떠바치고 있는 것들이 무언지 알아보고, 그들 가운데 어떤 것들을 공략하는 것이 권력을 무너뜨리는데 좋을지 논의한다. 아무리 대단하고 막강해 보이는 권력도 사실 권력이 유지되게 하는 버팀목들이 있고, 그걸 하나씩 제거해 나가면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노동조합에서 이 '권력 분석하기'를 해 보면 좋겠다(근데 그 워크샵 이름이 권력분석하기가 맞나???) 그러면, 노동조합이 맞서는 권력이 대단하고 무소불위의 어떤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되면서 두려움을 떨칠 수 있고, 또 버팀목들 가운데 뭐를 먼저 공략할 건지 계획을 세우기도 좋을 거 같다.
-가이드라인 만들기
작년 강화도에서 했던 트레이닝에서 배운 건데, 직접행동을 하기 전에 함께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거다. 철학적인 이야기(우리는 비폭력을 원칙으로 한다, 같은)도 좋고, 아주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이야기(경찰이 오면 일단 행동을 중단한다, 같은)도 좋다.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할 때 위에서 내려온 지령에 따라 움직이는 게 익숙하지 스스로 자기 행동의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서로서로 가이드라인을 조율하는 연습이 많이 부족한 거 같다. 그래서 자발성에서 운동이 역동적이지 못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런 면에서 이 툴은 참 유용할 거 같다 .
노동조합에서 이걸 해 본다면, 쉽게 생각하면 파업이든 뭐든 행동에 돌입할 때 서로 의견도 다르고 생각도 다른 조합원들끼리 모두가 공감하는 가이드라인을 작성하는 데 유용할 거 같다. 그리고 꼭 그런 투쟁하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노동조합의 활동 방향이나 계획을 수립할 때도 적용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미련이 아직 많이 남았나보다. 내가 노동조합 활동할 때 이리 했으면 될 것을. 뭐 그때는 고민도 지금보다는 짧았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