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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이 무력하다고 여겨지는 순간

용역들이 쳐들어와도 저희들은 무기가 하나도 없잖아요. 사실 지회장님이 저희들에게 무기를 준비하지 말라고 그러더라고요. "무기를 절대 준비하지 말고 몸으로 대처해주새요"하고 부탁을 하더라고요. 지회장님의 우니락 무기를 안 들면 용역들도 무기를 휘두르지 않을 줄 알았나 봐요. 나중에 조합원들이 많이 다쳤을 때 지회장님이 많이 괴로워했어요. 저도 마찬가지였죠. 선봉대가 조합원들을 보호해야 하는데 못했으니까요. 맨몸으로 사수하다보니까 많이 다친 거죠. 만약 우리까지 무기를 들었으면 굉장히 큰 사고가 났을 것 같기도 해요. 지회장님이 판단은 잘한 것 같아요.
-<대한민국 나쁜 기업 보고서> '치유와 회복의 시간' 김신태 SJM 생산기술부 노동자

나는 운동의 철학으로써 뿐만 아니라, 효과적인 면에서도 물리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것보다 비폭력이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대게의 경우 폭력은 이길 수 있는 수단이 되지 못하며, 오히려 더 큰 피해를 초래하고, 운동이 고립되기 쉬워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 무력감이 치솟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 안다. 그것은 폭력을 안 썼기 때문이 아니다. 김신태 님 말처럼 무기를 들었으면 더 큰 사고가 났을 거라고 나도 그리 생각한다. 그리고 SJM 노동자들이 비폭력으로 저항했기 때문에, 컨택터스의 폭력이 더 부각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날 SJM 노동자들이 컨택터스 용역들의 폭력에 어떻게 다쳤는지 나도 사진으로 봤는데, 그걸 어떻게 막을 수는 없었을까? 이 생각이 너무나 간절하다. 그렇게 많이 다치고, 희생해야 한다면, 그 투쟁 방식이 옳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피할 수가 없다. 

물론 우리가 비폭력 트레이닝을 하는 까닭이 이런 상황 때문일 거라 생각은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인간 상식에 기반해서 행동하지 않는 것들을 보면, 우리에게 어떤 방법이 남아있는 건지 심각하게 고민이 된다. 

작년, 구럼비 폭파를 막기 위해 손에 손을 맞잡고 파이프로 손을 둘러 봉쇄 작전을 폈던 내 친구들. 경찰은 파이프 안에 뭐가 있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망치와 톱으로 파이프를 파괴했다.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누군가 크게 다쳤을 수도 있던 상황이었다. 

공권력, 혹은 용역이라 할지라도 폭력을 행사하는 개개인들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생각이 비폭력 운동의 바탕일텐데, 그걸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치들에게는 어떻게 맞서야 하는 건지...

아직 책을 읽는 중이지만, 대충 훑어보니 SJM은 잘 해결이 되고 회장이 공개 사과도 하고 노동자들도 공장으로 다들 돌아간 모양이다. 이는 분명 비폭력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노동자들이 무기를 들고 용역에 맞섰다면, 그날 더 크게 다치는 사람들도 많이 나왔을 거고, 회장이 사과하는 일도 요원했을 거 같다. 

하지만, 내가 SJM 노동조합 간부였다면, 얼굴이 함몰되고 입술이 찢긴 조합원들을 보고 있었다면, 나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떤 판단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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