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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사준 게임기'에 해당하는 글(1)
2017.02.25   슈퍼콤, 슈퍼마리오3, 드래곤볼Z3


슈퍼콤, 슈퍼마리오3, 드래곤볼Z3

초등학교 4학년때인지 3학년때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광주 광천동 터미널 근처 화정동에 살고 있을 때다.

당시 또래 아이들은 하나둘 씩 가정용 게임기를 장만했다. 패미콤이 가장 일반적이었고, 메가드라이브도 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좀 더 마이너한 게임기 이름들은 기억이 안 난다.

당연히 나도 무척 갖고 싶었다. 내 기억으론 부모님께 뭐 사달라고 떼쓰는 타입이 아니었는데, 아무튼 떼를 썼는지 그냥 말은 못하고 티만 팍팍 냈는지 기억은 나질 않는다. 아빠가 어느날 게임기를 사가지고 왔다는 것밖에는.

우리집 게임기는 슈퍼콤이었다. 아마 광주 전라 지역 출신이 아니라면 생소한 이름일 거다. 해태전자(해태에서 껌만 만든 게 아니다!)에서 만든 가정용 게임기인데, 실상은 패미콤을 베낀 거였다.

아빠는 게임기와 함께 게임 팩 하나를 사가지고 오셨다. 그 게임 팩에는 4가지 게임이 들어있었다. 핀볼, 야구게임, 빙벽등반, 로드파이터(자동차 게임). 4개를 다 합쳐도 용량이 몇 백 kb에 지나지 않는 단순한 게임이었다. 당시에는 1메가를 넘는 게임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주 단순한 게임이지만 무척이나 재밌게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좀 지겨워졌는지, 아니면 닌자거북이 게임을 하는 같은 반 친구가 부러웠든지 때마침 일본으로 출장을 가는 아빠한테 닌자거북이 게임팩을 사다달라고 했다. 당시에는 정말 남자아이들에게 닌자거북이가 후레쉬맨 다음으로 인기가 많았다.

아빠는 일본에서 돌아오며 게임팩 하나를 안겨줬다. 기대헀던 닌자거북이가 아니었다. 아빠는 이 게임이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이라고 했지만 나는 닌자거북이가 아니라서 조금 실망했다. 그 게임은 슈퍼마리오3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닌자거북이가 아니라 슈퍼마리오여서 정말 다행이었다.

게임에 별 소질이 없던나는 슈퍼마리오를 정말 질리도록 했지만, 엔딩을 보지 못했다. 피리 아이템을 쓰면 몇 단계를 점프해서 끝판 까지 갈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 아이템을 쓰지 않고 정석대로 플레이해서는 2단계인 사막, 3단계인 물속까지밖에 못갔다. 게임 잡지의 게임 묘수를 열심히 찾아가며 숨겨진 아이템을 다 모아도 실력이 안 됐다.

5학년 때인가는 이번에는 엄마한테 게임팩을 사달라고 했는지 아무튼 엄마랑 동생이랑 나랑 시내에 나갔다. 당시 광주에서 가장 큰 백화점인 화니 백화점에 갔거나 가든 백화점에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날 광주 시내는 대학생들의 데모에 경찰이 쏜 최루탄으로 난장판이었다. 그날이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최루탄을 맡았던 날이다. 어땠는지는 별 기억이 안나는 것으로 봐서 별로 고생스럽지는 않았던 거 같다.

금남로였는지, 충장로였는지 아무튼 복잡한 길을 뚫고 백화점에 갔다. 그때 당시 가장 인기 있던 게임은 드래곤볼Z2였다. 베지터와 싸운 게 드래곤볼Z1, 프리저와 싸운 게 Z2였다. 너무 비싸면 사지 않기로 엄마와 약속을 하고 갔다. 그런데 백화점에서 드래곤볼Z2의 가격을 보곤 나는 실망을 금치않을 수 없었다. 4만5천원인가 5만원인가 그랬다. 지금도 게임 하나에 5만원이면 엄청 비싼 게임인데 당시가 90년대 초반이니, 5만원은 당시 초등학생인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당시 내 경제 관념은 학교앞에서 파는 가래떡 떡볶이 하나에 150원 수준이었다.

집이 넉넉한 편이 아니었는데, 엄마는 정말 큰맘을 먹고 드래곤볼Z2를 사주셨을 거다. 그 게임을 정말 질리지도 않고 했다. 순발력이 필요한 슈퍼마리오와는 다르게 드래곤볼은 급할 게 없는 게임이었다. 이 게임은 엔딩을 수십 번도 더 봤다.

왜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을까? 아까 라디오에서 산울림의 '청춘'이 흘러나와서 그런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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