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라디오  
Front Page
Tag | Location | Media | Guestbook | Admin   
 
'불행을 경쟁하는 운동'에 해당하는 글(1)
2015.09.22   왜 우리끼리 누가 더 불행한지를 경쟁해야해?


왜 우리끼리 누가 더 불행한지를 경쟁해야해?

두어 달 전에 한 노동운동가를 만나 술을 마실 일이 있었다. 술기운이 제법 달아오를 무렵, 그 노동운동가는 자신이 출판노동에 대해 생각하는 바에 대해 따지듯 말하기 시작했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의 말에 나도 화가 잔뜩 나 물러서지 않고 댓거리를 했다. 

주로 이런 내용이었다. 자신은 제조업 노동운동이 진정한 노동운동이라고 생각한다며 출판 노동자들 가운데 지금 고공농성을 하는 사람이 있냐고, 아니면 10년 넘게 해고 싸움하는 사람이 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요는, 출판노동자들은 예컨대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다른 노동자들에 비해 상황과 사정이 좋다는 거였고, 출판노조는 제대로 된 싸움을 한 적이 없다는 거였다. 

이런 식의 비교는 출판 노동 현장과 다른 노동 현장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보리출판사 노동조합 활동을 했던 일을 두고 "그래도 보리 정도면 좋은 회사가 아니냐"거나 "다른 곳보다 좋은 처우를 받고 있으면서 뭐가 부족해서 그러느냐"는 이야기를 내게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임금 협상 당시 대표이사는 내게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과 이 땅의 농민들과 북한의 인민들의 곤궁한 삶을 이야기하며 지금 보리 노동자들이 누리는 것이 얼마나 큰지를 역설했다. "너네는 가진 게 많으니 입 다물라"는 말이나 다를 바 없었다. 


사실 이런 시각은 지배자들 혹은 권력자들의 전유물이었다. 정부나 보수 언론에서 늘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귀족노조' 프레임이 대표적다. 대기업 노조에서 파업을 하면 돈 많이 받고 좋은 대우 받는 노동자들이 자기 이익만 챙긴다고 몰아간다. 경영자는 자기 이익 챙기는 게 능력이 되는데 노동자는 자기 이익 챙기는 게, 그것도 사회안전망 다 무너진 상황에서 자기 이익 챙기는 게 그렇게 가루가 되도록 까여야 하는 일인지 모르겠지만 이 문제는 넘어가더라도, 그 '귀족노조'들이 사회적인 문제나 정치적인 이유로 파업이라도 할라치면 불법 운운하는 양반들이 임금 문제로 합법 파업을 하는 대기업 노조는 이기적이라고 몰아가니 참. 그냥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을 싫어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다. 


문제는 앞에서도 예를 들었던 것처럼 이런 시각이 권력자나 지배자뿐만 아니라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그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제법 넓게 퍼져있다는 것이다. 


물론 누구나 납득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사람들은 더 큰 관심과 신경을 쏟기 마련이다. 쌍용차 해고자들이나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의 문제가 개별 공장을 넘어서서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일처럼 함께 하는 것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콜트콜텍이나 기륭 같은 곳에 많은 분들이 함께 하는 것은 그분들이 싸워온 그 기나긴 세월에 대한 부채감, 연민, 연대감, 의무감 등등이 복합적으로 작동한 결과일 것이다. 더 큰 희생을 감당하고 있는 사람들, 더 큰 고통에 직면한 사람들에게 먼저 연대하고 더 많은 관심을 갖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것이 상대적으로 더 작다고 여겨지는 고통을 감당하는 이들에게 싸우지

또한 전술적으로 더 상징적인 현장이 있을 수 있다. 문제를 개별 현장에서 풀어가는 것보다 더 넓은 차원에서, 예를 들면 국가를 상대해서 풀어가는 게 더 좋을 수도 있고, 그럴 때에는 상징적인 현장에 가능한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좋은 판단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느 경우든 간에, 그것이 저항과 발언의 자격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불행을 경쟁하는 일은 저항하는 사람들을 점점 더 극한으로 몰고 간다. 이미 우리 사회가 그렇게 가고 있지 않나 싶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만, 더 길게 단식을 해야만, 더 많은 사람들이 해고가 되어야만 사회적인 관심을 받게 된다. 나는 이런 식의 경쟁이 무섭다. 윤도현 밴드가 부른 박노해의 시 <이 땅에 살기 위하여>를 보면 '300일 넘어 쉬어터진 몸부림에도 대답하나 없는 이 땅에 살기 위하여'라는 말이 나오는데, 지금은 300일은커녕 3000일이 넘어도 대답하나 없는 세상이 되어버리지 않았나. 극한적인 상황을 감내해야 하는 운동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기 어려울 뿐더러, 운동을 하는 사람들조차도 몸과 마음이 너무 많이 상하게 된다. 


그리고 불행 경쟁은 문자 그대로 불행하게도, 상대적으로 좋은 처지와 상황(사실 따지고 보면 그다지 좋은 처지와 상황도 아니다. 출판노동을 보더라도 몸이 상할 위험은 다른 직종보다 덜할지 몰라도,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같은 문제들은 오히려 더 심각할 수도 있다)에 놓인 노동자들의 저항을 막고 할 말을 못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는 결국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이롭게 하고, 권력에 맞서는 사람들은 힘을 잃게 만든다. 


한국이 최루탄을 수출하는 나라 가운데 바레인이 있다. 바레인에서는 지난 몇 년 동안 수백 명이 민주화운동을 하다 죽었다. 한국산 최루탄이 그 나라에서는 살인무기가 된다. 아무튼, 대한민국이 제 아무리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해도 바레인보다는 나은 상황일 거다. 그렇다고, 우리가 바레인처럼 민주화 운동을 하다 몇백 명이 죽어나가지 않는다고 우리가 싸울 자격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누군가 우리를 보고 "바레인을 봐라. 한국은 그래도 좋은 상황이다."라고 우리를 주저앉힐 수 있을까? 만약 우리가 그 충고를 깊게 받아들여 우리보다 열악한 나라의 민주화 운동에는 열심히 연대하고 지지하면서도 정작 우리가 겪는 일에는 침묵한다면 누가 가장 좋을까?


나는 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왜 우리끼리 누가 더 불쌍한지를 경쟁해야 하나?" 

"부당한 것에 대해 말할 자격을 도대체 누가 정한단 말인가?" 

"과연 고통의 크기를 비교하는 게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아니 고통의 크기를 비교하는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BLOG main image
 Notice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81)
노동일기 (14)
생활일기 (21)
책갈피 (38)
기고글 (8)
계획적 글쓰기 (0)
 TAGS
폭력 시위와 비폭력 시위 레베카 솔닛 김상봉 민주적인 시위 엄마가 사준 게임팩 슈퍼콤을 아시나요? 죽음의 상인 비폭력 트레이닝 노동자 경영권 직접행동 진짜 민주주의 에이프릴 카터 병역거부 효과적인 집회 소년이 온다 콩장이 가장 맛있어 불법 투쟁과 합법 투쟁 채식하는 사람은 번데기 먹으면 안 되나요? 작은 집단의 독재자 혁명의 무기 멀고도 가까운 청국장 먹고 체한 이야기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누가 죄인이 되는가 고통에 관하여 내가 책을 읽는 이유 슬램덩크에서 배운다 아렌트의 정치 대한민국 나쁜 기업 보고서 최고의 도시락 반찬 빨래하는 페미니즘 수원구치소 음식 최악 불행을 경쟁하는 운동 병역거부와 오월 광주 정부가 인민을 해산해 버리고 다른 인민을 선출하는 것이 더욱 간단하지 않을까 아빠가 사준 게임기 출소 한 달 전 내 인생의 음식 어떤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 한국사회의 폭력성에 대한 고찰
 Calendar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Entries
 Recent Comments
 Archive
 Link Site
 Visitor Statistics
Total :
Today :
Yesterday :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