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여든 살이 넘은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어느 그룹 회장이다. 그 그룹은 업계에서 손에 꼽히는 회사다. 그룹은 여러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는데, 회장의 아들과 며느리와 딸이 맡아서 운영하고 있다. 그 그룹 회장이 이번에 자서전을 냈다. 그런데 그 책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서점에서 많이 팔리고 대중들의 반응이 격한지는 모르겠지만, 책 많이 읽고 글줄이나 쓴다는 양반들이 모두 그 회장의 책에 대해서 찬사를 늘어 놓고 회장이 살아온 삶에 대해서 존경을 마다하지 않는다.
나는 그게 도통 이해가 안 간다. 대를 이어서 한 집안이 그룹 경영 실권을 쥐고 있는 이 비정상적인 회사의 최고 실력자가 쓴 자서전에 대해 칭찬일색일 수 있지? 그 남자가 우리 나라 인문 교양의 산실을 일궈 온 민음사 회장 박맹호라 할지라도 말이다.
서평 쓸 일이 아니었다면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거다. 출판 선배의 인생 이야기에서 배울 것이 많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어느 회사나 사장님이 자기 회사 이야기를 할 때는 아름다운 부분은 과장하고 추악한 부분은 감추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도 도통 믿을 수가 없어서 그렇다. 서평 쓰는 것도 살짝 망설여졌다. 감히 민음사 회장님 자서전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 좋게 쓰면 내 취업 전선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고, 과연 내가 저 박맹호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만한 역량이 되나 자신이 없기도 했다. 그렇지만 칭찬과 찬양 일색인 서평들을 보면서 할 말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 대한 서평들은 대개의 경우 민음사에서 나온 책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서평을 쓴 사람이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이라든지, 특별한 인연이 있거나 기억에 남는 책들 말이다. 나도 민음사 책 가운데 기억에 남는 책이 있다. 『데미안』『삶의 한가운데』『카탈로니아 찬가』『인간 실격』같은 세계문학들과 『돼지꿈』『나목·도둑맞은 가난』 한국 문학 작품들인데 주로 감옥에서 읽었던 것들이다. 『책』을 읽어보니, 그 책들이 어떤 과정으로 나오게 되었는지 알 수 있어 좋았다. 팔십 평생을 출판 외길을 걸어온 사람이 쓴 책이니만큼 우리 나라 출판 역사의 단면들을 살펴볼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우리 출판 역사에 길이 남을 책들이 탄생비화와 여러 우여곡절 들은 여느 무협지 못지않게 재미있었다.
하지만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 그 불편함은 불행히도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진 고정관념이나 내가 누리고 있는 기득권 때문에 느끼는 불편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의 불편함이었다. 나는 이 책을 노동자의 입장에서 읽으면서 출판업계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고정관념과 기득권을 느꼈다.
하나 예를 들자면 “내 회갑을 기념해 출간되어 양서 읽기 붐을 일으킨 『책, 어떻게 읽을 것인가』”(14쪽)와 같은 구절이 그렇다. 좋은 책을 펴내고, 그 책으로 양서 읽기 붐을 일으킨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헌데, 동네 구멍가게도 아니고 커다란 주식회사에서 최고 경영자의 생일을 기념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만약 삼성이 이건희 생일을 기념해 새로운 노트북을 출시한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애플이 아이폰을 스티브 잡스 생일을 기념해 만들었나? 회사를 회장 개인 소유물로 여기는 이런 시각은 책 곳곳에서 나타난다.
그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아들, 딸, 며느리가 황금가지, 비룡소, 사이언스북 등 민음사 출판그룹의 주요 자회사 사장을 맡고 있는 것, 즉 족벌경영이다. 동네 자그마한 치킨집이라면 아버지가 회장하고 큰아들이 주방장하고 작은아들이 배달하고 자기들끼리 다 해먹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직원이 150명이나 되는 주식회사가 회사 경영진을 한 가족이 다 하고 있는 것은 대개의 경우 옳지 않다. 주식회사는 상법에 따라 회사의 이사를 주주총회에서 선출해야 하는데, 주주들이 한 집안의 구성원에게 경영진을 몰아주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민음사의 경우 주주총회를 거쳐서 그나마 절차적인 정당성이라도 확보했는지 어떤지는 외부인인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책 곳곳에 드러나는 ‘임명’(특히 책 뒤 연보를 보면 ‘몇 년도에 누구누구를 대표이사에 임명’한다는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다.)이라는 표현에서 유추해 볼 때, 박맹호 회장은 민음사를 자기 개인 기업으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 주식회사의 이사를 임명할 수 있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다.
출판사의 구조 문제는 민음사, 박맹호 회장만 비판할 문제는 아니다. 많은 출판사들이 족벌경영을 하고 있거나, 합리적인 노동 조건을 갖추고 있지 않다. 장시간 노동, 고용불안, 임금체불, 잦은 이직, 경영진의 폭언과 인격 모욕, 이른 정년(문화체육관광부에서 만든「2010 성별 문화인력 통계DB-문화예술·문화산업분야」에 따르면 출판 분야 연령 분포에서 40대는 15.5% 50대 이상은 없음이고, 여성의 경우에 40대는 1.7% 50대 이상은 없음으로 더욱 심각하다) 같은 말들이 출판노동자들을 늘 따라다닌다. 출판사 옆 대나무숲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정말 수도 없이 올라왔다.
노동 조건의 문제는 출판 업계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출판사들은 지식 문화 산업을 총체인 책을 만든다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노동자들의 문제의식을 무마하려 한다. 출판사에서 노동조합을 만들 때마다 노동자들은 “우리는 너희를 착취하는 자본이 아니다”, “우리는 출판 운동을 하는 곳이다. 일반적인 회사가 아닌데 어떻게 노사 관계를 맺냐” 따위의 말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공공연하게 이야기 된 적이 없다. 출판업계가 처한 위기 상황을 스마트 폰이나 멀티플렉스 같은 다른 문화 상품과의 경쟁, 도서정가제와 같은 국가 차원의 지원이나 출판 보호정책 부재에서 찾기는 해도 출판사들이 얼마나 낙후된 기업 문화와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 하는 사람은 없다. 노동자들이 겪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해 어느 노동자가 문제제기라도 할라치면, 그 사람은 책에 대한 열정이 없고, 쉽고 편한 것만 찾아가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매도당하기 일쑤다. 이직을 자주 하는 사람은 참을성이 없는 사람이고, 월급이 쥐꼬리만 해서 올려 달라는 사람은 자기 혼자만 먹고 살겠다는 이기주의자가 된다.
그러면서 출판계의 위기를 돌파할 내부 동력은 늘 노동자들의 열정이나 희생에서만 찾으려 하고 있다. 이런 인식은 박맹호의 『책』에도 잘 드러나 있다. “오늘날 출판 위기론이 팽배해 있지만, 동료나 선후배 출판인들의 한없는 열정이야말로 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 가장 큰 잠재력이라고 본다(256쪽)” 이런 생각이 바로 출판사들이 가진 구조 문제를 은폐한다. 열정은 이 일을 잘 하기 위한 조건 가운데 하나이지, 그것만으로 해결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쓰다 보니 책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민음사를 비롯한 출판사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박맹호 회장이 살아온 인생길이 척박한 한국 출판계에서 민음사를 출판 그룹으로 키워내고 5000권이 넘는 책을 만들어온 역사이니, 그의 자서전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출판업계 전반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따라서 이 서평에서 민음사 박맹호 회장에 대해 비판적으로 쓴 것은 비단 민음사와 박맹호만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 출판사들과 그 사장들에 대한 비판이라 해도 좋다.
박맹호 회장이 출판계에 끼친 좋은 영향과 업적을 싸그리 무시하고 싶은 생각도 그럴 깜냥도 없다. 그리고 출판계가 직면한 문제들이 박맹호 회장 탓이라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은 지금 박맹호 회장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는 사람들의 논리 구조와 마찬가지 문제를 가진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 이 책에 대해 찬사 일색의 서평을 읽고 나서 여전히 찝찝하고 씁쓸한 기분이 든다. 그 이유를 브레히트 시에 한 줄 보태는 것으로 이야기 하고 싶다. 브레히트는 시 ‘어떤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에서 이렇게 이야기 했다.
젊은 알렉산더는 인도를 정복했다.
그가 혼자서 해냈을까?
시이저는 갈리아를 토벌했다.
적어도 취사병 한 명쯤은 그가 데리고 있지 않았을까?
스페인의 필립왕은 그의 함대가 침몰 당하자
울었다. 그 이외에는 아무도 울지 않았을까?
프리드리히∐세는 7년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 위외에도
누군가 승리하지 않았을까?
박맹호는 민음사에서 책을 5000권을 펴냈다.
그가 혼자서 해냈을까?
* 이 글은 「기획회의」325호에 ‘편집자란 무엇인가’란 이름으로 실린 기획기사들에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미디어스 기고글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