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 일용이>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양철북, 2013
145쪽
재진이의 눈물
재진이는 평소에 말이 없다. 제 이름자를 겨우 쓰는 정도니 공부를 잘한다고 할 수 없다. 동무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는다. 다른 아이들이 피하는 건 아닌데, 남과 어울려 노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늘 혼자서 그림책을 들여다보고 논다, 잘 웃지도 잘 울지도 않으니 늘 조용하다.
그런 재진이가 하루는 갑자기 울음을 내놨다. 그것도 훌쩍훌쩍 소리 죽여 우는 게 아니라 아주 으앙으앙 소리를 내며 서럽게 우는 것이다.
"재진아, 왜 그래?"
우느라고 대답을 못한다.
"뚝 그쳐. 뚝 그치고 말해 봐. 누가 때렸니?"
그래도 말을 못한다.
"야, 누구야? 누가 재진이 때렸어?"
아이들은 모두 고개를 가로저으며 서로 눈치만 살핀다. 그렇다면 떄린 아이는 없는 거다. 만약 때린 아이가 있다면, 말은 안 해도 눈길이 한꺼번에 그 아이한테로 쏠리게 마련이니까.
한참 뒤에야 재진이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킨다. 양호실 쪽이다.
"너 어디 다쳤니? 어디 아파?"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럼 뭐야? 인마, 말을 해야지."
속 좁은 어른은 드디어 짜증을 내고, 때맞춰 재진이가 울음을 그쳤다. 재진이 눈길을 따라가 보니 양호실에서 조그마한 아이가 나오고 있다. 방금 약을 발랐는지 무릎이 빨갛다. 그 아이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복도 끝으로 사라진다. 재진이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읽던 그림책을 다시 펴 든다.
"옳아. 너 쟤가 다친 것 보고 울었구나."
재진이는 아무 말이 없다.
"쟤가 무릎을 다쳐 우는 걸 보고 너도 울었더 게지. 그렇지?"
그제야 재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날 재진이는 남의 아픔을 못 본 체하고 살아온 나를 몹시 부끄럽게 했다. (2002년 3월) 서정오, 대구 현풍초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