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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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9   경영자의 인사권, 경영권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의 생존권이다.
2012.04.12   노동자들이 겪은 일을 있는 그대로 써야 세상이 바뀐다
2012.04.11   아빠와 선거
2012.02.20   최근에 들은 가장 웃긴 말
2012.02.08   고래 배 속 이물질이 되는 일
2011.12.15   수치심없는 인간-김진숙을 부르던 입으로 자기 회사 노동자들에게 해고를 말하다.
2011.10.29   자전거 보관함
2011.10.17   보성 녹차 먹은 돼지
2011.10.04   사장님들에게 노동법 교육을 시켜야 한다 1
2011.10.04   나는 실패한 노동조합 간부다


경영자의 인사권, 경영권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의 생존권이다.

보름쯤 전 출판계에 작은 소동(?)이 있었다. 주로 인문, 사회 분야에서 진보적인 책을 내는 어느 출판사가 신입 직원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출판사는 면접까지 보고 합격자를 정해 전화로 합격 사실을 알리며 출근 날짜까지 알렸는데, 바로 다음 날 채용을 취소한다는 메일을 합격자에게 보냈다. 채용을 취소하는 까닭은, 합격자의 트위터 글들을 우연히 봤는데 자기 회사와는 맞지 않는다는 판단을 했다는 거다. 합격자는 새롭게 취직한 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강사를 하고 있던 학원에도 연락해 그만두겠다고 한 상황에서 난데없이 출근도 못 해 보고 백수가 되어 버렸다.

 

여기까지는 출판계에서 뉴스랄 것도 없는 흔히 있는 일이다. 당사자가 이것은 부당해고라며 회사에 찾아가고, 공개적으로 알리지 않았다면 이 일 또한 아주 조용하게 넘어갔을 거다. 하지만 당사자는 자기가 겪은 일을 알렸다. 회사는 즉각 입장글을 냈는데, 트위터 글을 사찰한 것이 아니고 정식으로 회사에 들어오기 전이니 부당 해고가 아니라는 뉘앙스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을 알게 되고 출판사에 항의를 하고 SNS를 중심으로 출판사를 비판하는 글이 올라왔다. 결국 출판사는 자기들이 한 행동이 부당 해고나 다를 바 없음을 인정하고, 피해자가 이 일을 공론화 했을 때 회사의 대응이 여러 면에서 적절치 못했음을 인정하며 당사자와 독자들에게 사과를 했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조를 만들고, 언론노조와 다른 출판사 (노조)분회를 만나 조언을 듣겠다고 했다. 피해 당사자에겐 따로 인격권을 침해하고 정신적인 피해에 대해 보상을 하겠다고 했다.

 

회사가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고, 그걸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약속한 것은 아주 예외적인 일이었다. 대부분 출판사들은 그렇지 않다. 내가 다니는 회사만 해도 그렇다. 회사에 입사하고 한 달이 채 안 되었을 때, 나보다 두 달 먼저 회사에 들어온 수습 사원이 짤렸다. 회사가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면서 채용한 사람이었는데, 그 사업에 대한 구상 자체가 완전히 달라지면서, 수습 사원을 정직원으로 채용하지 않게 된 것이다. 당사자는 다른 부서라도 좋으니 이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고 의사를 밝혔지만 회사는 듣지 않았다. 회사는 보안 문제와 경영상 판단으로 부득이하게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다고 밝히며,‘특채로 들어온 수습 사원이기 때문에 부당해고가 아니라 계약해지라고 했다. 그 뒤로도 수습 사원이 수습기간을 마치고 정직원이 되지 못한 사례는 몇 차례 더 있었다. 회사는 그 때마다, 이건 부당 해고가 아니라고, 직원을 채용하는 권한은 회사의 고유한 권한이라고 주장했다.

 

출판 노동자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면 이와 같은 사례들은 수도 없이 쏟아진다. 꼭 어느 회사 하나가 잘못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회사들이 비슷한 일들을 저지르고 있다. 인턴사원으로 뽑아서 막 쓰고 버리는 건 부지기수고, 수습사원을 여러 명 뽑아 놓고 당신들 가운데 몇 명만 정식 채용 될 거라고 대놓고 경쟁시키는 회사 이야기도 들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서로 자기 회사가 저지른 나쁜 짓을 이야기 하다가 다른 회사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바닥은 어딜 가나 마찬가지구나, 이런 좌절에 빠지기도 한다.

 

정식 채용이 아니니 부당해고가 아니라는 생각, 수습 사원을 자르는 것은 계약 해지이지 해고가 아니라는 생각, 비정규직을 자르는 것은 계약 해지이지 해고가 아니라는 생각은 출판계 경영자들에게 만연해 있다. 출판사들이 대체로 영세하고 규모가 작기 때문에 합리적인 체계를 갖추지 못해서 그렇기도 하고, 수습사원이나 비정규직들을 자르는 건 노동법에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생각해서 그러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경영자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것이 경영권과 인사권은 법이 보장하는 경영자의 고유 권한이라는 말이다.

 

경영권과 인사권이 노동법에서 명확하게 사용자의 고유 권한이라고 규정되어 있지는 않다. 다만 다양한 판례들에서 그것이 사용자의 권한인 것을 확인시켜 주는 사례들이 있을 뿐이다. 혹 법으로 보호 받지 못하는 어느 노동자를 회사가 해고하는 것이 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도 그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법은 넘지 말아야한 최소한을 규정할 뿐이어서 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기업이 저지르는 것은 불법이 되는 거지만, 법을 지켰다고 해서 그 행동이 무조건 정당한 것은 아니다. 최저 임금보다 적게 주는 거는 불법이지만, 최저 임금을 딱 맞춰 준다고 해서 그것이 불법이 아니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옳은 일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게다가 법은 어차피 사람들 사이에 맺어진 일종의 규칙이기 때문에, 당연히도 완벽할 수 없으며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경영자들이 마음대로 휘두른 인사권과 경영권은 노동자들에겐 폭력이 된다. 특히 경영권과 인사권에 따른 결정이 해고라면 더더욱 그렇다. 계약해지든, 채용 취소든, 권고사직이든 이름이 어떻게 붙고 법에 따라 어떻게 나뉜다 해도 이 모든 것은 노동자들한테는 해고다. 정규직 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수습 사원이든, 인턴 사원이든 노동자들이 스스로 동의하지 않았는데 일터를 잃는 모든 상황은 해고다. 일터를 잃은 노동자들은 밥 벌어먹고 사는 것이 위태로워지고, 회사에서 잘렸다는 자괴감으로 마음에도 커다란 상처를 입는다. 생존권을 위협하고, 자존감을 망가뜨리는 일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일어났든 불법으로 일어났든 노동자에 대한 폭력일 뿐이다.

 

경영자의 인사권과 경영권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의 생존권이다. 쉽게 생각하면 된다. 경영자들이 인사권과 경영권을 지금처럼 마음대로 휘두르지 못하게 되더라도 그이들 목숨이 위태로워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회사에서 잘리면 자기 자신과 식구들의 생존이 쉽게 위협받는다. 우리 나라처럼 사회 안전망이 미약한 나라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생존권보다 중요한 법은 없다. 경영자들이 부여받은 권리 가운데 노동자들 생존권보다 더 존중받아야할 권리는 단 하나도 없다.



노동자들이 겪은 일을 있는 그대로 써야 세상이 바뀐다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동분서주 할 때 일이다. 직원 전체가 모이는 자리를 가졌는데, 그 자리에서 한 사람이 왜 꼭 지금 만들어야 하냐?”고 물었다. 그 사람은 한 부서를 책임지는 직책을 달고 있었고, 나는 그 질문을 단순한 질문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일을 내 블로그에 썼다. 자칫 민감할 수 있어서 말한 사람 이름이나, 회사 이름 따위는 밝히지 않고, 이른바 시기상조론에 대해 비판을 했다. 프로야구 선수들이 선수협 만든다고 했을 때, 병역거부자들이 대체복무제도 입법을 요구했을 때 번번이 등장했던 시기상조론에 빗대어 노동조합 만들자고 하니 시기상조론을 펼친다고 썼다. 헌데 그 말을 한 당사자가 내 블로그에 들어와 그 글을 보고 댓글을 마구 달았다. 불편했지만, 그냥 뒀다.

그리고 얼마 뒤 회사 회식자리에서 상무이사가 내 블로그 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공개적인 장소에다 회사 비판을 쓴 것은 잘못이라는 거다. 나는 바로 반박했다. 내 블로그는 공적인 장소가 아니라 했다. 상무이사는 내 블로그 방문자 수가 30만 명이라며 이게 어떻게 공적인 공간이 아니냐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몇 년 동안 누적인원이 30만 명이고 그 가운데는 여러 번 들어 온 사람들이 많다고 설명해 줘도 소용이 없었다. 더군다나 내가 쓴 글은 특정인을 거론하지도 않았고, 사실 관계를 왜곡한 것도 없었다. 공적인 곳에 올려도 크게 문제가 될 리 없는 글이라고 해도 소용없었다. 직원들 블로그 글을 문제 삼는 건 이명박이 언론 통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하자, 상무이사가 버럭 했다. 자기를 어떻게 이명박과 비교 하냐고.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직원이 트위터에서 상사 뒷담화를 했다. 그게 어찌어찌해서 대표이사 귀에 들어갔다. 대표이사는 어느 날 그 직원 아버지에게 전화를 해서 “OO가 전세계인이 보고 있는 트위터에 회사 욕을 쓰고 있다.”고 했다. 대표이사와 그 직원 아버지가 원래 알고 있던 사이라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 직원은 평소 하룻밤에도 트윗을 수백 개 쓰면서 여러 번 리밋에 걸리는 걸로 유명한 직원이었는데, 그 많은 트윗 가운데 회사와 관련된 건 극히 일부였다. 그리고 문제로 삼은 그 트윗도 회사 이름을 거론하면서 욕한 것도 아니었고, 상사 이름을 대며 욕하는 수준도 아니었다. 가만 뒀으면 그 수많은 트윗에 떠밀려 본 사람도 거의 없고, 쓴 본인조차도 언제 자기가 그런 트윗을 썼는지 모르고 지나갔을 일이다.

이 두 경우는 공개적인 공간에다 회사 비판을 해서 회사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것 일 게다. 우리가 아무리 블로그와 SNS는 공적인 공간이 아니라고 해도 회사에선 다르게 생각한다. 그리고 위 두 경우 글 자체도 크게 문제가 될 내용이나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회사는 또 생각이 달랐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 헌데 아래 경우는 어떨까? SNS나 블로그처럼 다른 사람도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라면 어떨까?

대표이사가 한 번은 모든 직원들에게 우리 회사 책 리스트를 나눠 주며 읽은 책에 동그라미를 쳐 오라고 시켰다. 당연히 반발이 일어났다. ‘이 조사를 왜 하는 거냐, 나중에 인사에 반영하려는 거냐부터 해서 어떻게 책을 읽었다’, ‘안 읽었다로 구분할 수 있냐, 이건 책에 대한 모독이다같은 의견까지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사람들은 비판하면서도 각각의 방식으로 설문지를 냈다. 헌데 직원 한 명이 백지를 냈다. 대표이사는 그 직원에게 백지를 낸 것이 책을 하나도 안 읽었다는 것인지, 아니면 설문을 작성하라는 업무지시를 거부한 것인지 밝히는 경위서를 내라고 지시했다. 그 직원은 자기가 백지를 낸 까닭을 편지로 써서 대표이사에게 전달한 뒤 경위서를 냈다. 대표이사는 경위서를 제출하라고 한 시간까지 경위서를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업무지시 불이행이고, 그 직원이 쓴 편지에 모욕적인 표현이 있어서 자기가 언어폭력을 당했다는 이유로 그 직원에 대한 징계위원회를 소집했다. ‘강제적인 업무 지시’, ‘생뚱맞다느니’, ‘억지 설명’, ‘기계적 충성도 조사’, ‘어설픈 자구책따위 표현을 문제 삼았다. 분명 다소 감정적인 표현들이었지만, 말단 직원에게 대표이사가 심한 모욕을 당했다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표현들이었다. 그 직원은 징계위원회에서 노동조합이 반대해서 중징계는 받지 않을 수 있었지만, 경징계를 받고 그 뒤에도 한참 동안 교묘한 회사의 괴롭힘에 힘들어야 했다.

그나마 우리 회사가 노동조합도 있고, 다른 회사에 비해 노동자들 처지가 좋은 회사기 때문에 저 정도에서 그친 것이다. 아마 다른 회사였다면, 노동조합이 없거나, 노동자들 처지가 굉장히 열악한 곳이었다면, 세 사례 모두 해고로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우리 나라 굴지의 기업인 삼성에서 사내 게시판 노동조합을 만들자는 글을 올렸던 박종태 씨는 그 일로 해고당해 지금도 힘든 싸움을 계속 하고 있다. 이렇듯 노동자들에겐 자기들이 겪은 일을 솔직하게 쓰거나 자기 생각을 쓰는 일은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일이다. 명예훼손으로 걸릴 수도 있고, 자칫하면 해고당하고 이 바닥에서 발 못 붙일 수도 있다. 그나마 징계를 피할 수 있어도, 회사 윗분들에게 찍히는 것마저 피해갈 순 없을 거다.

사장님들은 노동자들이 자기 생각을 말하고, 자기가 겪은 일을 글로 쓰는 걸 두려워한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하는 말과 글을 명예훼손이나 해고 따위를 들먹이면서 가둬 두고 싶어 하는 것이다. 아동문학가이자 교육운동가였던 이오덕 선생님은 노동자들이 겪은 일을 있는 그대로 써야 세상이 바뀐다.’고 하셨다. 옳은 말씀이다.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겪은 일을 있는 그대로 쓸 자유(표현의 자유)’는 언론출판의 자유로 대표되는 자유권이기도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싸움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인권오름 293호에 실린 글)



아빠와 선거

2002년 가을, 나는 대학교 4학년이었다. 그 학기 성적표는 처참했다. 한 과목만 D를 받고 나머지는 F를 받았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두 개의 선거 때문에 그랬다.

먼저 학생회 선거. 나는 당시 총학생회장 후보로 출마했다. 시간을 아끼려고 집을 나와서 학교앞 친구네 집에서 선거 기간 한 달을 살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학생회장 선거에서 떨어졌다. 우리 학교 역대 총학생회 선거 최다 표 차일 거다. 병역거부를 전면에 내세웠는데, 져도 그렇게 크게 질 줄은 몰랐다. 내가 학생회장이던 문과대를 제외한 모든 단과대에서 다 졌다. 특히나 공대에서 엄청 졌다. 평소 하루 연장 투표를 해도 투표율 40%가 안 넘던 공대가, 투표 첫날 투표율 40%를 넘기는 엄청난 열기를 보였다. 가끔 생각해본다. 2002년이 아니라 2012년 어느 대학 총학생회 선거에 어느 후보가 병역거부자가 될 거라고 하면서 출마를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역시나 당선은 안되겠지만, 그래도 2002년 나와 내 친구들보다는 조금은 더 좋은 성적표를 받겠지.

더블스코어 표차로 떨어진 것을 슬퍼할 여유도 없이 나는 대통령 선거 운동에 뛰어들었다. 당시 나는 사회당 당원이었고, 사회당 후보로 출마한 김영규 교수 선거운동으로 전국을 돌면서 선거 운동을 하게 된 것이다. 학생회 선거로 한 달만에 집에 들어가서는, 내일부터는 대통령 선거 운동때문에 또 한 달 동안 집에 못 들어온다고 부모님께 일방적으로 말을 하고 집을 나섰다. 엄마는 날씨 춥다고 걱정하시며 옷가지를 주섬주섬 싸 주셨고, 아빠는 서운한 기색이 엿보였지만 별 말씀을 안 하셨다.

대통령 선거에서 사회당 김영규 후보가 몇 표를 받았는지 기억은 안난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됐던 그 선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투표 하루 전날 밤, 한 달 동안 집에 안 들어가다가 하루 들어가서 자고 다시 집을 나간 한 달만에 집에 들어간 그 날밤 우리 엄마에게 들었던 말이다. 투표 전날이라고 밤 12시까지 대학로였나, 서울역이었나 암튼 서울 시내에서 선거운동을 했다. 영등포에 있는 숙소에 들려 짐을 챙겨 온수역 집까지 가니 시간은 이미 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엄마랑 아빠는 아직 안 자고 있었다. 이미 술을 한 잔 하고 들어오셨는지 얼굴이 불콰하고 아빠 혀는 꼬여있었다. 내가 집에 들어가자 우리 아빠는 과장된 제스처를 취하며 나를 반겼는데, 나는 그게 조금 싫었다. 나는 우리 아빠가 술 마시고 집에 와서 우리한테 평소랑 다르게 과장된 애정표현을 하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그 날도 내 불편함이 표정이나 태도에서 다 드러났을 거다. 아빠는 이내 코를 골며 잠에 빠져들었고, 엄마가 그날 저녁에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저녁에 엄마랑 아빠는 동네 호프집에 갔다고 했다. 술을 마시며 기분이 좋아진 아빠는 옆 자리에 앉은 사람들에게 "우리 아들이 사회당 선거 운동하니까 내일 대통령 선거는 꼭 사회당 찍으세요. 사회당이 정 싫으시면 민주당을 찍으세요."라고 말했다 한다. 엄마는 아빠한테 그런 말 하지 마라고, 다들 자기가 알아서 찍을 텐데 모르는 사람들한테 그러지 마라고 말렸지만, 아빠는 오히려 엄마한테 우리 아들내미가 선거운동하는 당 찍으라는 게 뭐가 어떠냐고 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아빠한테 미안한 마음이 울컥 올라왔다. 울 아빠는 전라도 사람으로 그때까지는 평생 민주당 DJ선생(꼭 선생이라고 불렀다.)을 지지하는 분이었다. 그 때문에 나랑도 정치 이야기를 하면서 여러 번 싸웠다. 내가 김대중 욕을 하면 싸움이 되다가, 이회창을 욕하면 동맹이 형성되는 분위기, 뭐 대충 그랬다. 그런 아빠가 아들이 사회당 선거 운동한다고 당선 가능성을커녕, 불심으로 대동단결 김길수(이름이 맞나?)보다 지지율도 안 나오는 듣보잡 정당 찍으라고 했다는 거다.

그때 우리 아빠가 노무현을 찍었는지, 김영규를 찍었는지는 모른다. 일부러 물어보지 않았다. 그리고 10년 뒤 총선. 우리 아빠는 이미 닥치고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감옥 가있는 동안 박노자나 한홍구 책을 나를 이해하기 위해 부러 사서 읽었다는 이야기를 건네 들었다. 내 병역거부도 아빠의 정치 의식 변화에 영향을 끼쳤겠지? 며칠 전에 엄마랑 통화하면서 어디 찍을 거냐고 물어봤다. 엄마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고 하고, 아빠는 지역구에서는 통합진보당 후보를 찍을까 한다고 했다. 민주당 하는 꼬라지가 영 맘에 안 드시단다. 나는 넌지시 정당 투표 어디에 찍을지 안 정했으면 녹색당이나 진보신당에 찍으라고 했다. 그 당들이 잘되면 병역거부자들이 더 이상 감옥 안 갈 수 있다고 했다.

우리 부모님이 오늘 누굴 찍었을까? 정당 투표에서 내가 말한 당을 찍었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물어보고 싶지 않다. 알아서 잘 찍으셨겠지. 이따가 나도 투표하고 와서 전화나 한 통 드려봐야겠다. 요새 내가 전화 안 한다고 서운해 하시던데...

 

 

 



최근에 들은 가장 웃긴 말
단협 자리에서 상무이사 왈
작년 단협에서 노측도 상처를 많이 받았지만, 사측도 상처를 많이 받았다.

다른 회사 노동자를 통해 건너 들은 말
노동조합 사장님이 시켜서 만든 거다.  

단협 자리에서 대표이사 왈
우리 회사는 법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법을 들이대면서 잘못을 지적할 수 없다. 
-6시간제 시행하면서 휴일근무 수당을 주지 않는 것은 불법이라는 말에 대한 대답. 

맘대로들 지껄이시길. 근데 그런 이야기를 공개적인 자리에서도 해 보시지. 
나는 진보입네 하고 다니는 자리에서도 당당하게 똑같이 말해주세요. 


 


고래 배 속 이물질이 되는 일
그래, 결국 고래 배 속 이물질이 되는 일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남들이 보기엔 지나치게 까칠하고 별 것도 아닌 일 가지고 물고 늘어지는 사람.
그렇게 여겨질 수도 있다. 같은 동료들 사이에서도 나를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저 구역질 나는 악취를 그저 참고만 있을 순 없다.
그래도 걱정이 많이 된다. 그냥 회사 그만 둘까? 엄청나게 많이 생각해봤다.
아마도, 앞으로도 그만둘 때까지 계속 "그만 둘까?" 이럴거다. 

지금껏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내가 이 말을 하면 오히려 관계가 더 벌어지지 않을까?
내 생각이 늘 옳은 것은 아닐텐데, 쉽게 내뱉어도 되나?
회사랑 싸우게 되면 결국 싸울 생각이 있고 싸울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나뉘게 될 텐데, 그거는 피하고 싶은데...

이제 딱 두가지만 내 앞에 남았다. 
악취 나는 곳을 탈출할 것이냐, 악취난다고 이야기 할 것이냐. 
물론 악취를 없애면 가장 좋겠지만, 악취의 근원을 제거할 수 없다면,
수수하고 은은한 천연향수를 덕지덕지 부려서 아름답게 보이는 이곳이 
안에서 얼마나 썩은내가 나는지 말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다. 

일단은 탈출하기보단 악취가 난다고 떠들어야 겠다. 
탈출은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 

이제 다시 진정 고래 배 속 이물질이 된다. 
뭐 이전에도 이물질이었지만, 그떄는 다른 이물질들이 많이 있어서 외롭지 않았다. 
이제 어쩌면 아주 외로운 이물질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물질이 되겠다. 
결코 고래 배속에 파묻히지 않겠다. 




 


수치심없는 인간-김진숙을 부르던 입으로 자기 회사 노동자들에게 해고를 말하다.
이 모든 일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그래서 저치들이 어디 가서 진보연 하지 못하도록, 자기들이 저지른 악행을 은근슬적 없었던 일처럼 하지 못하도록 해야한다. 그런데 너무 게을렀다. 이제라도 다시 다짐하자. 이 모든 일을 기록으로 남기자. 또 언제 다시 글을 쓸지 모르지만, 그래도 다시, 아니 처음으로 시작하겠다.

수감시절 책으로 만난 서경식과 서경식을 통해 만나게 된 프리모 레비는 내게 큰 인상을 줬다. 특히 인간이 지녀야 할 수치심에 대한 통찰과, 수치심을 지니지 않은 가해자들의 수치심까지 떠 맡고 저들도 인간임을 증명해야했던 레비의 삶이 내게 커다란 의미로 다가왔다. 부끄러워해야할 자들이 오히려 떳떳하고 당당한 세상. 우리가 저치들의 수치심까지 담당해야하고, 그래서 저치들은 관심도 없는 '저들도 인간이다.'는 사실을 우리가 증명해야하는 역설. 그 역설적이 상황 때문에 레비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 그러니까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는 건 정말 감옥 생활보다 더 지옥이다.

노사 관계가 딱히 좋았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막장으로 치닿기 전에는 분명 경영진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경영진이니까, 노동자와는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는 거고, 노동자와 처지가 다르니 갈등하는 거라고. 혹 조금 나쁜 사람이거나 조금 무능한 사람이어도 어쨌든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난 8월에 열렸던 징계위원회를 계기로 나는 더 이상 저치들이 사람이라는 생각을 머리에서 지워버렸다. 사람이라면 수치심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저들에게 '수치심'을 털끝만큼도 발견할 수 없었다.

발단은 이러했다. 어느날 대표이사가 전 직원에게 우리 회사에서 나온 책 리스트를 나눠 주며 읽은 책을 표시해서 내라고 했다. 그런 조사를 왜 하는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 설명도 없었다. 사람들은 당연히 반발했다. 몇 몇은 사내 게시판에 대표이사의 지시를 비판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몇 명은 그냥 대충 거짓으로 작성해서 내고, 나를 포함한 몇 명은 제출은 하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을 덧 붙였다.

'전'은 독서실태조사표를 백지로 냈다. 하지만 여름 휴가를 다녀온 뒤 다른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든 다 제출한 것을 알고 나름의 기준으로 조사표를 작성해서 다시 냈다. 하지만 대표이사인 '윤'은 이미 마음이 상했던 거 같다. '윤'은 '전'에게 왜 백지로 냈는지에 대해 경위서를 쓰라고 했다. '전'은 경위서를 쓰기 전에 A4 한 장 정도 분량으로 간단한 편지글을 써서 전달했다. 그리고 난 뒤 경위서를 냈다.

회사는 며칠 뒤 징계위원회 소집을 알렸다. 징계 사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고, 다만 '전'이 단협 징계 사안이 "타인에 대한 언어폭력"을 했다는 것과 취업규칙 징계 사유인 "근무에 관한 신고, 제출을 허위로 하거나 신고, 제출, 승인, 허가 등을 받아야 할 사항에 대하여 이를 태만히 한 경우", "소행불량으로 회사 내 풍기질서를 문란케 하였을 때", "동료 간, 상급자에 대한 항명 또는 폭행"에 해당한다고 했다. 노조에서는 '전'의 어떤 행동이 언어폭력이고, 소행불량인지 밝히라고 했지만 회사에는 구체적인 답변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따져 물었다. 사유가 뭐냐고. 대표이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대표이사에 대한 언어폭력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어떤 표현이 문제냐고 물었다. '생뚱 맞다, 강압적인 업무지시다, 기계적 충성도 조사' 이런 표현들이 대표이사에 대한 언어폭력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 표현들이 다소 감정적이긴 하나 징계사유로 볼 수 없다고 했다.
소행불량은 뭐냐고 물었다. '전'이 대표이사에게 보낸 편지를 사내게시판에 올려서 전직원이 공유하게 한 것이 문제란다. 헌데 그거 대표이사가 '전'에게 올리라고 시켰다. '전'이 반발하자 대표이사 '윤'은 업무지시라며 강압적으로 이야기했다. 대표이사가 시켜서 한 일을 징계사유랍시고 들고 왔다. 알고 보니 사측 징계위원회 위원들은 대표이사가 그 글을 올리라고 지시한 걸 몰랐나보다.

회사 쪽 징계위원들은 '전'에게 정직 또는 해고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 이유가 가관이다. 대표이사가 더 이상 저 직원과 함께 일할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란다. 회사 쪽 징계위원들 면면을 보자. 사내 이사인 김, 전교조와 글쓰기교육연구회 활동을 하는 박, 민교협과 한철연 활동을 하는 김, 그리고 농부철학자라고 스스로를 알리는 윤. 우리 사회에 이름난 진보 인사들이다. 노조는 희망 버스 몇명 가냐며 묻고, 해고는 살인이라고 외치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대표이사를 비판하는 편지를 썼다고 징계위를 열더니 대표이사가 저 직원과는 일할 수 없다고 했다고 정직이나 해고를 해야한다고 한다. 심지어 '박'은 "'전'의 양심은 존중한다. 하지만 양심에 따라 행동했다면 거기에 책임도 져야한다."고 했다. 이 말은 병역거부자들에게 "병역거부 양심을 존중한다. 하지만 법을 어겼으니 감옥에 가라."는 말과 똑같은 말이다.

나는 징계위원회를 거치면서 마지막 끈을 잘라 버렸다. 저 사람들이 인간이라는 사실이 적혀있는 끈. 가늘게 이어져 온 그 끈. 그들은 그냥 사장이고, 경영진이고 자본가일 뿐이었다. 사회에서 진보 인사로 존경 받는 저치들. 그들이 회사 안에서도 진보적일 거라는 기대는 애시당초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온갖 위선으로 포장한 그 사람들이 징계위원회에서 보여준 태도와 입장은 정말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탄식이 절로 나게 했다.

하지만 아직 저들은 더 보여줄 것이 있었다. 징계위원회는 노동조합의 반대로 중징계를 못하고 끝이 났다. 회사가 할 수 있는 징계는 노조의 동의를 얻지 않아도 되는 경위서 정도였다. 헌데 징계위원회 다음 날 회사는 '전'을 대기 발령 내렸다. 가서 따지니 징계가 아니라 인사 조치란다.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징계였다. 우리는 분노했지만 일단 참기로 했다. 그래봤자 자기들이 원하는대로 '전'을 자를 순 없을테니까. 그런데 이번엔 컴퓨터를 못쓰게 했다. 대기발령인데 어떻게 컴퓨터를 쓸 수 있냐는 거다. 개소리였지만 또 한 번 참았다. 개인 컴퓨터를 가져와서 쓰려고 하니 또 뭐라고 그랬다. 대기 발령이 무슨 뜻인지 모르냐고 . 또 참았다. 책을 읽고 있으니 회사에서 개인 책을 읽으면 안된단다. 개니까 개소리 하는 게 당연하지. 참았다. 압권은 '전'에게 내려진 공식적인 징계인 경위서 였다.

'전'은 경위서를 써서 냈다. 그런데 경위서가 반려되었다.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는 다고 다시 쓰라는 거다. 이 사람들은 이걸 무슨 반성문으로 여기고 있었다. 반성문 그게 어떤 건가! 교사들이 학생을 훈육의 대상으로 여기고 쓰게 하는 아주 더러운 글쓰기다. 교육에 대해 고민을 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을 그 반성문. 우리 나라에서 가장 좋은 교육서를 낸다고 자부하는 회사에서, 직원에게 반성문을 강요했다. 제대로 반성하지 않는다고 다시 쓰라고. '전'은 노조와 상의해서 살짝 말을 바꾸었다. 이 상황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고 대표이사가 언어폭력이라고 느꼈다면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고. 여전히 대표이사는 반성하지 않는다며 다시 써오라고 했다. '전'이 그 당시 내린 판단과 생각이 '잘못'이었다고 써오라고 직접 코치까지 했다. 이 무슨 민주인사에게 거짓 자백을 받아내는 경찰도 아니고.

결국 일은 노조가 나서면서 일단락 되었다. 반성을 강요하는 경위서는 잘못이라는 법원 판례를 제출하면서 경위서는 사실관계만을 쓰는 문서라고 못 박았다. '윤'은 노조가 맞지 않는 판례를 들먹인다고 했지만, 결국 경위서를 다시 요구하지는 않았다.

과연 저들은 저렇게 살아도 부끄럽지 않은 걸까? 수치스럽지 않은 걸까? 김진숙을 찬양하던 입으로 자기 회사 노동자에게 해고를 말해도 정녕 괜찮은 걸까? 이소선을 찾고, 전태일을 부르던 목소리로 자기 회사 노동자들에게 치졸하게 굴어도 자기들이 내 뱉은 말들이 부끄럽지 않은 걸까? 아이들을 살리는 교육서를 낸다면서 훈육용 반성문을 노동자들에게 요구해도 저들의 자아는 분열되지 않는 걸까?

저들도 사람이라면 저들도 수치심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걸 찾을 수 없었다. 그 뒤로, 지금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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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보관함

이 회사에 들어와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 가운데 하나는 점심 메뉴가 채식하는 사람들을 위해 따로 준비된다는 거였다. 카레가 나와도 고기 안들어간 카레가 따로 나오고, 떡국을 끓여도 고기 안넣고 끓인 떡국이 나왔다. '소수자를 이렇게 배려해주는 회사도 있구나.' 신기하면서도 내가 이 회사를 다닌다는 게 자랑스러웠다. 그때는 정말이지 만나는 사람마다 회사 자랑을 하고 다녔다.

자전거를 회사 건물 안에 두는 게 문제가 됐다. 회사 안에 두면 안되는 까닭이 너무 궁금한데, 대표이사도, 상무이사도 아무도 그걸 말해주지 않는다. 그저 건물 안에 두면 안된다는 이야기만 반복한다. 우리 회사에 자전거 출퇴근족은 딱 두 명. 비가 안 올때는 회사 밖 자전거 주차장에 자전거를 두지만 비 올때나, 서울로 외근 나가서 자전거를 챙겨가지 못할 때는 안에 들여놓을 공간을 마련해 달라고 했다. 회사에 빈공간도 많으니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무슨 똥고집인지 대표이사는 무조건 안된다고 한다. 여러 직원이 다시 한 번 생각해달라는 글을 인트라넷에 올리니까 다시 한번 생각하는 척을 한다. 직원들 가운데 하나가 자전거 보관함 사진을 올렸는 데 그 자전거 보관함(모든면이 막힌)을 37대 설치할 경우 비용을 뽑아보란다. 그 보관함 엄청 비싸다. 회사가 소수만을 위해 비용을 쓸 수 없다며 일반론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보관함을 설치하면 직원 수만큼 37개를 설치해야 한다고 했다. 37대 설치하면 1억이 넘는 돈이 든다. 세상에.

천안 사는 직원이 자전거로 출퇴근 하나? 아니 서울 사는 대표이사 본인도 자전거로 출퇴근 할 수 없다. 37명 직원 모두가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할 수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억지를 부리는 까닭은 뭘까? 일반론에 입각해서 자동차 주차장을 37개 만들지는 않으면서 말이다.

누가 그런 비싼 자전거 보관함 만들어 달랬나. 비 피하고 도선생 피할 공간이면 족하거늘. 직원들과 소통하는 척. 직원들 이야기 들어주는 척. 애쓰는 척. 그러니까 더 짜증나고 성질난다. 애시당초 이 문제를 해결할 마음이 없다는 거 이미 다 안다. 사장님하, 추잡하다. 참 추잡하다.



보성 녹차 먹은 돼지
우리 회사는 점심에 유기농 농산물과 조미료로 만든 밥을 준다.
고춧가루 하나도 남기지 않는 빈그릇 운동(?)을 하기 때문에
기름을 많이 쓰는 음식도 하지 않는다.

점심 먹은 뒤에는 출출할까봐 간식도 준다.
피자, 치킨 같은 정크푸드를 먹지 마라고 간식도
한살림 같은 생협에서 사온 재료들로 만들어 준다.
유기농 감자, 고구마, 생협 빵, 생협 찐빵, 떡.

이렇게 몸에 좋은 음식만 먹고 지내는데
이상하게 나는 돼지가 된 기분이다.
몸에 좋은 보성 녹차를 먹여서 키운 돼지가 된 기분이다.


사장님들에게 노동법 교육을 시켜야 한다
 

법으로 무언가를 정해서 사람들한테 법이니까 무조건 지키라고 하는 걸 썩 좋아하지 않는다.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법이 무서워서 나쁜 짓 안하는 사람들은, 법을 교묘히 피해가는 방법을 찾아내면 언제든 스스럼없이 나쁜 짓을 할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법은 결코 약한 사람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법을 만드는 사람도, 법을 집행하는 사람도, 법으로 심판하는 사람도 모두 힘없고 약한 사람보다는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 편에 선다. 노동자 출신으로 국회의원이 된 사람들도 있지만 그이들은 너무 소수다. 대부분이 돈 있고 빽 있는 집안 출신이거나 자기가 그런 처지니 노동자 편을 안 드는 건 어찌 보면 이해는 된다. 마지막으로 법으로 많은 것을 정해버리면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힘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조금 더디더라도 잘못된 것들을 스스로 깨닫고 판단할 수 있는데, 법으로 강제해 버리면 스스로 깨달을 기회가 없어져버린다.


법으로 무언가를 정해버리는 게 정말 싫지만, 이거 하나만은 법으로 정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노동법에 넣어
도 좋고, 다른 법 조항에 넣어도 좋다. “모든 회사 경영진은 1년에 일정 시간 이상 노동조합에서 지정한 강사에게 노동법 교육을 받아야 한다.” 물론 이런 법 조항이 있더라도 문제가 생길 것이다. 영악한 사장님들은 법을 교묘히 피해가는 방법을 찾아낼 테고, 이 법을 안 지키더라도 법원은 솜방망이 처벌을 내릴 거다. 혹은 교육을 받더라도 자기 식대로 멋대로 받아들이거나, 조그만 틈이라도 찾아내서 악용하는 수도 있겠지.


그래도 좋으니 이런 법이 생겨서 딱 1년만이라도 시행하면 좋겠다. 그 이유는 우리 나라 사장님들이 노동법을 몰라도 너무 모르기 때문이다. 얼마나 모르냐면, 자기들이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르고도 그게 부당노동행위인지 모른다. 노조가 회사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단협에 일방적으로 안 들어오고도 부당노동행위가 아닌 줄 안다. 새로 생긴 노동조합이 단체교섭을 하기 위해 예비 교섭을 하자고 했더니 예비교섭 필요 없다며 교섭안이나 내놓으라는 회사도 있다. 단체교섭이 무엇인지, 왜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이러는 거다. 직원들에게 반성한다는 내용이 드러나도록 시말서를 다시 써오라는 회사도 있다.


몇 가지 이야기를 예로 들었지만 이건 정말 빙산의 일각이다.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 한 까닭은 다른 무엇보다도 사장님들이 아주 기본적인 것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사장님들 개인 성품이나, 개인 정치의식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그게 ‘사장님들이 노동법을 모른다.’는 말이 성립되지 않을 만큼 큰 차이는 아닌 거 같다. 오히려 개인으로 봤을 때 굉장히 진보적인 사장님들이 ‘나는 진보적인 사람이고, 나는 늘 노동자들에 연대해 왔으니까 내가 내린 판단은 우리 회사 노동자들에게도 분명 좋은 판단일거야.’라는 생각을 가지고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이 사장 개인이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노동법에 대해 너무나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정말 의도적으로 나쁜 마음을 가지고 노동자를 탄압하는 사장들도 있지만, 그마저도 노동법 교육을 받아서 법이 보장하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안다면 노동자 탄압이 눈에 띄게 줄어들 거다.


물론 법 따위 의지 하지 않고,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이 힘이 세지면 많은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해결될 거다. 법이 무서워서 법을 요리조리 피해볼까 잔머리만 굴리던 사장님들도 노동조합을 꼼수로 피해갈 수는 없을 터,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할 거다. 그래도, 상상해본다. 모든 회사 경영진이 노동법에 따라 노동교육을 받는다면 어떨까? 아주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란 것을 알지만, 너무 답답한 현실에 이런 꿈이라도 안 꾸면 어찌 살겠나. 이런 꿈 나 혼자 꾸었을까?




나는 실패한 노동조합 간부다
 

이상하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불안한 기운을 예민하게 알아차렸던 걸까? 그날따라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예전에 회사를 그만둔 사람들이 남긴 사직서를 찾아서 읽고 있었다.

“형, 모레 저녁에 시간 돼?”

백이 메신저로 말을 걸었다.

“모레 저녁엔 약속이 있어서 안 돼.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이야 늘 있지.”

백의 대답이 서럽게 들린다. 왜 우리 회사는 바람 잘 날이 없을까? 정말 그랬다. 내가 들어온 뒤 단 한 번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조금 뒤 백이 다시 말을 걸어왔다.

“형 지금은 시간 돼?”

“어, 괜찮아. 휴게실에서 보자.”

휴게실로 가는데 안 좋은 생각이 든다. ‘서두르는 성격이 아닌데, 무슨 일이지?’ 내려가 보니 백이 먼저 와 있다. 자리에 앉자마자 본론부터 이야기 한다.

“상의할 게 있어서……. 사실 상의도 아니지, 이미 마음 정했는데……. 나 회사 그만 둬.”

올 것이 왔다. 이런 말이 나올까봐,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애써 밀쳐냈는데,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딱 들어맞는다더니, 제기랄.

“맡은 일은 마무리 하고 나가려고 했는데……, 노조도 그렇구……. 마음 정하고 나니까 형 생각이 먼저 나더라. 형한테 미안해.”

“미안하긴…….”

백은 평소에도 굉장히 신중하고 침착한 친구다. 잠깐 울컥하는 일이 있다고 사표를 쓸 친구가 절대 아니다. 게다가 백은 사람들이 회사 욕할 때도 그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우리 회사가 가진 장점들을 먼저 보려는 친구였다.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졌다.

“영혼이 파괴되는 기분인 거야?”

“어……. 다른 사람들한테 미안한 마음도 들고, 근데, 내가 먼저 살아야겠더라구.”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잡을 수가 없었다. 영혼이 파괴되는 기분은 바로 내가 요새 느끼는 기분이기 때문이다. 노조도 만들었는데 우리가 열심히 하면 회사도 바뀌지 않겠냐고 말 할 수 없었다. 나도 장담 못하는데 누굴 설득할 수 있겠나.


김, 김, 문, 조, 신, 강, 정, 박, 그리고 백까지. 노조 만들고 난 뒤 회사를 떠난 사람들. 작년 7월에 노동조합을 만들었으니 1년 2개월 동안 9명이 나갔다. 직원 수가 고작 서른 명 살짝 넘는 회사에서 말이다. 그 가운데는 자기 꿈을 찾아 새로운 곳으로 간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회사에 지치고 치여서 떨어져 나갔다.

가장 슬픈 건, 노조 활동을 가장 열심히 하는 사람들부터 나간다는 거다. 회사가 민주적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사람부터 가장 먼저 상처받고 그만둔다. 함께 교섭위원 했던 사람들이 나갔고, 대의원했던 사람들이 나갔다. 단체교섭을 하면서, 회사와 갈등을 겪으면서, 일반 조합원들보다 더 심하게 감정싸움을 하다 보니, 안보고 살면 좋을 추악한 모습들은 너무 많이 보다 보니 견딜 수 없었던 거다. 어느 회사나 그렇지만 노조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회사일도 제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자꾸 회사를 그만두는 것은 노조뿐만 아니라 회사에게도 커다란 손실이다. 회사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알면서도 상관없다는 건지, 그냥 두 손 놓고 있다.

백 이야기를 듣고 나서 자리에 올라와 곰곰이 생각해봤다. 우리는 회사가 좀 더 민주적으로 운영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노조를 만들었다. 저마다 노조에 동참하는 뜻은 조금씩 달랐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더불어 회사를 부당하게 그만두는 일이 없도록 하고 싶었다. 노조를 만들고 난 뒤, 아홉 명이나 회사를 나갔다. 앞으로 몇 달 안에 몇 명이나 더 나갈지 모를 일이다. 나는 실패한 노동조합 간부인 거 같다.

최근에 한 조합원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회사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그 조합원을 정직이나 해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조합이 반대해서 중징계는 막았지만 회사가 보여준 모습에 많은 조합원들이 적잖이 실망했다. 그래도 노동조합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고를 막은 게 어디냐고 스스로 위안 삼았다.

그런데 그게 아닌 거 같다. 노동조합 만들고 나서 아홉 명이 나갔다. 우리는 회사가 휘두르는 해고라는 칼날을 노동조합으로 막았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건 확실히 막았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 실망하고 상처받으며 회사를 그만뒀다. ‘우리가 보호한 건 누구였지? 우린 대체 무엇으로부터 조합원을 보호하려고 했던 거지?’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안다. 노동조합이 만능이 아니라는 거 잘 안다. 이제 1년 갓 넘은 신생 노조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것도 안다. 노동조합은 만드는 것보다 만들고 난 뒤 잘 운영하는 게 더 어렵다는 것도 지난 1년 동안 비싼 수업료를 치르며 배워서 알게 됐다. 조합원들이 회사에서 자신의 미래를 찾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 두는 건, 노동조합 차원에서 어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좀 더 오랫동안 이 회사에서 함께 즐겁게 일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노동조합 활동을 함께 할 사람들이 떠나는 마당에 노동조합에서 어찌 할 수 없는 문제라고 결론 내버리는 건 참 쉽고 무기력하다.

솔직히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다. 나조차도 떠나는 사람들 마음과 같은데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실패한 노동조합 간부다.”

다시 한 번 되뇌어 본다. 실패를 인정하자. 대신 무기력해지진 말자. 길을 찾다 보면 길이 열리겠지. 혹 길이 없으면, 그냥 가는 거지 뭐. 노동자들이 언제부터 평평하게 닦인 대로를 편하게 걸어갔겠냐.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하면, 길을 찾거나, 새 길을 내거나 이도저도 아니라도 다음에 비슷한 고민을 할 누군가에게 ‘이곳은 길이 아니니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친절한 팻말 하나 세우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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