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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0   <정희진처럼 읽기>, 정희진, 교양인, 2014
2015.01.14   <저항하는 평화> 정희진 하승우 서경식 엄기호 강인철 최현정 조영선 김종대, 전쟁없는세상, 오월의봄
2015.01.14   <A가 X에게: 편지로 씌어진 소설>
2014.12.15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 홍은전, 까치수염, 2014
2014.09.25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 보수VS진보 or 자주국방VS한미동맹 or 엔엘VS피디에 대해
2014.08.07   <소년이 온다>, 한강, 창비, 2014
2014.08.06   죽음에 대하여. 1
2014.02.06   한국 탈핵
2014.01.31   이 폐허를 응시하라
2013.05.07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


<정희진처럼 읽기>, 정희진, 교양인, 2014

44쪽, 저는 그분들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 벌레 이야기

분노, 고통, 복수에 비해 용서, 화해, 평화는 우원한 가치로 간주된다. 종교는 말할 것도 없고 진보 진영이나 여성운동, 평화운동 세력도 후자를 좋아한다. 분노와 복수는 극복해야 할 비정상 상태라는 것이다. 나는 탐욕이 아이를 죽였다면, 용서와 화해라는 인간의 '고상한' 욕망이 아이 엄마를 죽였다고 생각한다. 

고통의 감정은 물질이다. 달리 해석될지라도, 크기가 작아질지라도,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몸에 있다. 가해자의 몸은 고통 경험이 없으므로 온갖 절대자의 이름으로 자기 마음대로 구원, 용서, 평화라는 관념의 향연을 주관할 수 있다. 초월(超越,dis/embodiment)은 득도가 아니다, 경험 없는 몸은 현실과 무관하므로 구원도 마음의 평화도 쉽다. 

반면 피해자의 구원은 '고문하는 자'도 피해자도 지칠 만큼 고문의 노동이 지난 후, 잠시 들이마시는 숨 같은 것일지 모른다. 분노와 평화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뜻이 없다. 누구의 분노, 누구의 평화인가가 의미를 결정한다. 따라서 나는 용서가 저주보다 바람직한 가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해자의 권력은 자기 회개와 피해자의 용서를 같은 의무로 간주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분노는 개인의 마음 상태가 아니라 구조적 권력 관계다. 마음으로 다스릴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피해자의 분노는 관리나 통제의 대상이 아니다. 불가능에 가까운 타인에 대한 헤아림, 깊이 있는 지성의 영역에 놓여져야 한다. 나는 용서와 평화를 당연시하는 사회에 두려움을 느낀다. 2차 폭력의 주된 작동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아이의 죽음보다 더 잔인한 사건은 피해자에게 요구되는 용서와 치유라는 당위다. 사람들, 심지어 남편조차 피해자가 조용히 하기를 원한다. 가해자와 사회는 자신이 져야 할 짐을 피해자의 어깨에 옮겨 놓고, 불가능을 감상한다. 평화가 할 일은 그 짐을 제자리로 옮기는 고된 노력이지, 평화 자체를 섬기는 것이 아니다. 


53쪽, 경험한 나 말하는 나-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

구조적으로 반복되는 차별을 받았을 때, 우리는 갈등한다. 고통과 억울한 심정을 타인에게 말하고 싶지만('하소연이라도 실컷 해봤으면.') 내 처지를 수용해줄 사람을 만나기도 어렵고 더욱이 상황이 개선된다는 보장도 없다. 소문만 나고 결핍된 인간으로 취급받을 위험이 더 크다. 

말하고, 공감받음이 '해결'의 시작이기에 이 욕구는 절실하다. 동시에 낙인으로 인해 사회적 성원의 권리를 잃을 수 있기 때문에 이 두려움은 참고 사는 '동력'이 된다. 이 내면의 갈등이 격렬한 나머지 남들이 먼저 알아보는 경우도 많다. 

차별 경험을 말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을 배려한다. 그래서 경험한 자아와 말하는 자아는 분열된다. 또 분열되어야만 한다. 모든 말하기, 글쓰기가 협상인 이유다. 원래 이 자아 분열 개념은 나치 학살의 생존자들이 자기 경험을 믿어주지 않을 것을 걱정하여 자아를 조정하는 고통에서 발전했다. 지금은 모든 담론 행위에 공통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듣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말의 수위와 표현은 달라진다. 조절하지 못하는/않는 경우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정신이 너무 순수해서 아픈 이들이요, 다른 하나는 전현직 대통령처럼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한느 권력자다. 두 경우가 아니라면, 협상의 고통을 정치적 에너지로 삼아야 한다. 


74쪽, 손 무덤-손 무덤

사는 대로 생각하지 말고 생각하는 대로 살라? 내가 몹시 경계하는 말이다. 턱뼈 탑은 한국 사회에서 생각한 대로 사는 삶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종착이고, <손 무덤>은 삶을 재현하고 생각한 예술이다. 

(중략)

몸든 객관적이지도 중립적이지도 않다. 몸은 사회적 위치성과 당파성의 행위자다. 예를 들어 '산업 재해 당한 몸', '노동하는 몸', '성폭력 겪은 몸'에서 시작하는 삶. 이것이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이다 몸과 의식은 하나다. '좋은' 생각이든 '나쁜' 생각이든 그것은 모두 몸이다. 



<저항하는 평화> 정희진 하승우 서경식 엄기호 강인철 최현정 조영선 김종대, 전쟁없는세상, 오월의봄

170쪽

 한국 특유의 남성성이란 것에 대해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요. 바로 자신을 피해자로 만들면서 자신을 학대하는, 사디즘적이면서 마조히즘적인 속성 말이죠. 이런 남성들은 흔히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비군들은 물론 병역거부자들 중에서도요. 
군대에 갔다 온 예비역들의 경우는 트라우마가 있죠. '군대 가서 2년 동안 그렇게 고생했는데..."하는. 아무래도 군대의 경험을 내재화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해요, 병역거부자들에게는 감옥생활이 있죠. 힘들면 굉장히 징징대는 스타일도 있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밝은 모습을 보이는 스타일이 있는데, 그 중간이 없어요. 요컨대 한국 남성은 트라우마가 왔을 때 표출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거지요.



<A가 X에게: 편지로 씌어진 소설>

<A가 X에게: 편지로 씌어진 소설> 존 버거, 김현우 옮김, 열화당



-38쪽

덧없는 것은 영원한 것의 반대말이 아니에요. 영원한 것의 반대말은 잊히는 것이죠. 잊히는 것과 영원한 것이, 결국에 가서는,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들은 틀렸어요. 

영원한 것이 우리를 필요로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그들이 옳아요. 영원한 것은, 독방에 갇힌 당신과, 여기서 이렇게 당신에세 편지를 쓰고 당신에게 피스타치오와 초콜릿을 보내는 나를 필요로 하죠. 


-95쪽

그리고 지금 현재 우리가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건, 승리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 투쟁에는 끝이 없으며, 그러한 사실을 알고도 투쟁을 계속해 나가는 것만이, 삶이 우리에게 준 커다란 선물을 알아보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거겠죠!



-121쪽 

회문(回文). 글쓰기에서, 앞에서부터 읽으나 뒤에서부터 읽으나 똑같은 말. 야니스에 따르면, 팔린드롬은 그리승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123쪽

감옥에선, 책을 읽고 메모를 한다. 다른 게 아무것도 없는 곳에선 단어들이 중요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 홍은전, 까치수염, 2014

71쪽 

TV에서 '불쌍한' 장애인을 보면서는 혀를 차고 지갑을 열던 사람들이 눈앞에서 자신의 길을 막고 그 길을 함께 가자고 외치는 장애인들에게는 '병신'이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박경석 교장은 이렇게 말헀다.

좋습니다, 우리는 병신입니다. 그러나 당당한 병신으로 살고 싶습니다. 30년 동안 집구석에서 갇혀 지냈다고 아무리 말해도 안 들어주더니, 자신들이 당장 30분 늦으니까 저렇게 욕을 하는군요. 이제 그 병신들에게도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 줍시다. 당당한 병신으로 살아 봅시다!


76쪽

권리는 '법전에 있지 않았다. '배운' 사람들이 먼저 찾아서 하사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권리는 차별 받고 억압 받는 사람들이 그 자신의 힘으로 싸워서 쟁취하는 것이었다. 오늘의 '당연한' 저상버스와 지하철 엘리베이터가 그 증거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 보수VS진보 or 자주국방VS한미동맹 or 엔엘VS피디에 대해

정희진의 한국현대사 강의를 듣고. 


오늘은 김활란 이야기였는데, 역시나 김활란 이야기만 하지는 않았다ㅋㅋ

기억에 남는 것, 혹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것들을 정리해놔야지. 안 그럼 다 까먹음.


우선 간단 노트

-김활란의 친일 행적은 문제 삼으면서 왜 보봐르가 프랑스의 식민주의를 옹호한 것은 문제 삼지 않나? 왜 김성수의 친일 행적은 문제 삼지 않나?(실제로 인터넷에서 백과사전을 검색해보면 김활란은 '직업'에 '일제의 앞잡이'라고 되어있지만 김성수는 친일부역행위에 대한 서술이 일체 없음)

-목포가 근대 개항기에 신여성의 집단 거주지였다고

-허정숙, 채용신과 도원결의했다고

-화이트 남성이 브라운 여성을 브라운 남성으로부터 해방시켰다.(인도 샤티 논쟁)

-새마을 운동의 아이러니. 농촌 여성들의 가장 활발한 사회 진출 통로

-연줄과 네트워크는 뭐가 다른가?



1.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강박과 강요가 사람들의 관계를 망친다. 완벽하게 올바른 사람은 존재할 수 없다. 정희진 왈, "내 모든 언어는 서울중심주의와 이성애중심주의 안에서 이루어진다."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에 대구할 말이 없지만, 문제는 정치적 올바름이 아니라 올바르지 못한 것을 은폐하는 구조다. 


2. 보수VS진보 or 자주국방VS한미동맹 or 엔엘VS피디는 결국 같은 목표(nation building)를 공유하고 방법이 다를 뿐이다. 

이 이야기는 정희진 강연 때마다 듣는 이야기. 오늘 새롭게 들렸던 거는, 내 경험과 내 고민에 연결되었기 때문에. 노동조합 활동 경험에 대한 고민.

돌이켜 생각해보면, 윤구병 대표이사와 좋은 관계(내가 보기에는 종속적이지만)를 맺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윤구병 대표이사를 잘 감시하고 잘 견제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 나. 둘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이것도 '좋은 국가 만들기'라는 목표를 공유했던 진보/보수, NL/PD,자주국방/한미동맹과 마찬가지로 '좋은 회사 만들기'라는 목표를 공유했던 게 아닐까? 나는 그들과 무척이나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다른 건 방법 뿐이었던 걸까.아닌가? 회사는 국가나 사회처럼 커다란 조직이 아니어서 이런 식으로 단순하게 비교할 수는 없나?  

만약 정희진 샘이 제기한 질문이 회사와 노동조합 활동에도 유요하다면, 그럼 나는 무엇을 했어야 했을까? 좋은 회사 만들기라는 목표 대신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었어야 했나?

물론 좋은 회사 만들기만이 목표는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이 어땠는지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지만, 나는 강요된 행복을 거부하기 위해, 불행마저도 내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정도의 존엄을 가진 인간이기 위해 노동조합 활동을 앞장서서 했다. 그냥 내 생각일 뿐일까? 지나고 난 뒤에 각색해서 아름답게 포장한 기억일 뿐일까? 



<소년이 온다>, 한강, 창비, 2014

<108쪽>

그와 나의 경험이 비슷했을지 모르지만, 결코 동일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혼자서 겪은 일들을 그 자신에게서 듣지 않는 한, 어떻게 그의 죽음이 부검될 수 있습니까?


기록이란 애초에 가능한 것일까?


<114쪽>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병역거부의 양심에 대해 생각하다 



<117쪽>

  다음의 일은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더 기억하라고 나에게 말할 권한은 이제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선생도 마찬가집니다. 
  아니요, 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 


오월 광주와 병역거부의 만남 


<120쪽>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든 내가 겪은 일들을 이해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노동조합 활동을 스스로 기록하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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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하여.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를 보고 나서 <노동자, 쓰러지다와> <소년이 온다>를 함께 보고 있다.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이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아우슈비츠의 죽음과 산업재해와 518의 죽음이 세월호의 죽음들과 뒤벅범이 된다. 


불에 타 죽고, 물에 빠져 죽고, 총에 맞어 죽고, 가스실에서 죽고, 용광로에 뼈째 녹아서 죽고. 죽음의 양상은 다르지만, 이 죽음들 맞닿은 지점에서  두 가지가 눈에 박힌다. 


이 죽음들은, 구조적인 죽음이다. 생명활동의 일부로서 죽음 같은 게 아니다. 예전 같으면 국가폭력이라고 쉽게 이야기 했을 텐데, 지금은 국가 폭력이라고 쉽게 말하고 싶지 않다. 국가 폭력이 아니라는 게 아니라, 국가 폭력이라고 말해버리면 너무 단순화하는 거 같다. 폭력에 죽어간 사람들의 삶이 단순하지 않은 것처럼 그들을 죽인 폭력도 아주 단순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는 결국 이 죽음들은 나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다"(소년이 온다, 95

쪽) 이 질문은 결국 죽음에서 시작했지만, 죽음뿐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전반에 걸쳐진 질문으로 확장해야 한다. 



한국 탈핵

<한국 탈핵> 김익중, 한티재, 2013


232쪽

또한 1980년대는 우리나라에서 야간노동이 시작된 시기인데, 핵발전소 건설과 야간노동의 시작이라는 이 두 사건이 거의 같은 시기에 일어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세계보건기구가 발암 요인으로 규정한 야간노동이 일반화된 데에는 핵발전소에 의한 심야전기가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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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폐허를 응시하라

<이 폐허를 응시하라> 레베카 솔닛 지음, 정해영 옮김, 펜타그램, 2012


10쪽

엄청난 재난이 닥쳤을 떄 우리가 보이는 행동은 우리가 이웃을 재난의 참혹한 피래보다 더 큰 위협으로 여기느냐, 아니면 집과 상점에 있는 재산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느냐에 달려 있다. 


10~11쪽

지진이나 폭격, 태풍이 닥치면 사람들은 대부분 이타심이 발동해 자기 자신과 가족, 친구와 사랑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타인과 이웃들을 보살피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재난이 닥쳐오면 인간은 이기적으로 돌변하고 공황에 빠지거나 야만적인 모습으로 퇴보한다는 관점은 그다지 사실적이지 않다. (중략) 대재난을 당했을 때 주로 최악의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은, 남들이 분명 야만적으로 행동할 것이므로 자신들은 야만적 행위를 막으려는 방어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믿는 이들이다.  


18쪽

만일 지옥에서 낙원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기존 질서와 체제가 작동을 멈춘 상태에서 우리가 자유롭게 살며 다른 방식으로 행동한 덕분이다. 


32쪽

재난이 발생한 순간, 구질서가 더는 존재하지 않으며, 사람들은 즉흥적으로 구조 활동을 벌이고 대피소와 공동체를 형성한다. 그러면서 결점 많고 부당한 기존 질서의 부활이냐, 아니면 새로운 질서의 등장이냐를 두고 투쟁이 일어난다. 이때 새로운 질서는 어쩌면 더 억압적일 수도 있고, 재난 유토피아처럼 더 정의롭고 자유로울 수도 있다. 


81쪽

우리 모두가 여러 개의 자아를 갖고 있음을 인정한다면, 재난 시에 나타나는 인간 본성의 대부분은 우리가 보통 또는 항상 어떤 사람인지를 암시하기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될 수 있는지를, 혹은 어떻게 되는 경향이 있는지를 암시한다. 


196쪽

"무법성과 강력한 사회 통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대중매체는 재난 관리에서 군대의 역할 확대를 요구하는 정치적 담론을 반영하는 동시에 강화한다. 이런 정책적 입장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군국주의가 미국에서 어떤 힘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231쪽

어떤 면에서 재난은 사회와 정부에 존재하는 긴장과 갈등과 경향을 드러내거나 위기 국면으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정부가 국민들의 긴급한 필요에 복무하지 못할 때, 정부가 이기적이거나 무능하거나 엘리트들의 이익에만 몰두하여 다수의 안녕을 파괴하는 것처럼 보일 때, 재난이라는 격변은 그러한 문제를 바로잡을 기회를 제공한다. (중략)

예전의 재난학자들은 자연재해 속에는 모든 당사자가 공통의 이해와 목표를 가진다고 생각했지만, 현대 사회학자들은 재난을 숨은 갈등들이 표면으로 올라오는 순간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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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평범하지 않지만 평범한 소수장들의 이야기>

인권운동사랑방 엮음, 오월의 봄, 2013


12쪽

차별금지 사유의 삭제 자체가 신호탄처럼 한국 사회의 차별을 번쩍 비췄는데 아무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척했다. 그러면서 차별은 나쁜 것이라고 되뇌고 있었다. 

무언가를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말하지 않는 것은 그것의 부재를 선언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래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을 보고 듣겠다는, 겁 없는 마음을 먹었다. 


13쪽 

많은 사람들이 차별은 특정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고유하게 부딪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차별은 사라져야 할 것이지만, 그/녀들에게서 사라져야 할 것이 된다. 나나 너는 차별을 하는 사람도, 차별을 받는 사람도 아니고, 오로지 그/녀들이 겪는 어떤 피해가 차별이 된다. '우리'의 문제가 아니므로 '우리'는 차별을 없앨 수 없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그/녀들이 말한다. 나, 나야, 네가 부른 그/녀가 아니라 너를 부르는 나, 나라고. 


90쪽

대상에 따른 차별적 정책으로 나타나는 분할 통치는 지배의 오랜 전략이다. 


109쪽

다수의 사람들이 소수자의 경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도록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고통의 이미지'를 극단적으로 전시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낯선 주체들의 경험을 대중들의 관습화된 연민에 기대어 전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관습화된 연민이란 다수자의 가치를 위협하지 않으면서 낯선 주체들의 경험에 기꺼이 동참할 수 있는 감정적인 계기를 마련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의 말처럼 연민도 이해와 소통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연민은 그 당사자가 자신의 경험을 굴욕적인 것으로 기억하도록 만들어 자기를 긍정할 수 있는 계기를 박탈하기도 한다. 



112쪽

성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성애적 경험은 중요한 경험이지만 그것이 결정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성정체성은 차별과 억압의 경험, 동질감, 타인과 관계 맺기 등과 같은 다양한 경험 속에서 형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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