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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2월 12일 - 베트남 퐁니 퐁넛 학살 그리고 세계> 고경태, 한겨레출판, 2015

11쪽

'기억의 자격'을 생각한다. 1968년 12월 9일 울진, 삼척에 침투한 북한 특수부대원들이 9살 이승복 군의 입을 찢어 죽였다. 한국 사회에서 기득권을 지닌 기억이다. 1968년 2월 12일 퐁니, 퐁넛에 진입한 한국군 해병대원들이 6살 응우옌득쯔엉 군의 입에 총을 쏘아 죽였다. 한국인들은 잘 모른다. 배제된 기억이다. 자격을 얻지 못하고 따돌림당한 기억이다. 잊으면 괴물이 될 수도 있다. 나라도 나서 특별하게 기억해주고 싶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복원해주고 싶었다. 
베트남과 연결된 1968년은 대한민국의 어떤 원점이다. 비밀스런 기원이다. 북한보다도 못 살던 한반도 남쪽의 농업국가는 어떻게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13위(2014년)의 경제대국이 되었는가. 박정희는 어떻게 자신의 장기집권 플랜과 경제 개발 계획을 착착 진행시키며 대한민국을 견고한 병영국가로 만들었는가. 이 책이 완전한 해답을 선물하진 못하지만 어떤 암시를 줄 것이다.



41쪽

하루 사이, 대한민국 서울과 베트남 투이보 마을에서 습격 사건이 벌어졌다. 하나는 최고 권력기관의 심장부를 향했고, 하나는 민가를 향했다.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드러내는 서술



49~53쪽

그날은 1968년 2월 7일이었다. 제대 일자를 손꼽아 기다려온 군인들에게 기절초풍할 일이 벌어졌다. 전 장병 제대 보류! 일주일 뒤엔 군 복무 기간을 6개월 늘리는 방침이 발표됐다. 육군과 해병대는 2년 6개월에서 3년으로, 공군과 해군은 3년에서 3년 6개월로 늘어났다. 

박정희 대통령은 2월 7일 "올해 안에 250만 재향군인 전원을 무장시키고 그에 필요한 무기공장을 연내에 건설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는 4월 1일 향토예비군대 창설로 이어졌다. 존슨 대통령이 2월에 지원키로 결정한 군사원조자금 1억 달러 중 절반이 여기에 사용됐다. 지역마다 예비군 무기고가 설치됐다. 1년 뒤인 1969년부터는 고등학교(주 2시간, 연 68시간)와 대학(주 2시간, 연 60시간)에서 교련 수업이 시작됐다.

(중략)

11월 21일엔 시도민증 제도가 폐지되고 주민등록증 제도가 시행되었다. 18살 이상의 모든 국민에게 13자리 번호가 부여되고, 죽을 때까지 이 주민등록증을 휴대할 의무가 생겼다. 북한 특수부대원의 청와대 습격사건 이후, 주민등록법 개정안의 국회 처리가 급물살을 탄 결과였다. 12월 5일엔 국민교육의 기본이념이라는 국민교육헌장이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선포됐다. 초중고등학생들은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로 시작하는 600자짜리 국민교육헌장 전문을 달달 외워야 했다. 일부 학교에선 학생들이 그 전문을 완벽하게 외울 떄까지 집에 보내주지 않았고 체벌을 가했다. 

(중략)

1968년은 대한민국 병영화의 기틀이 마련된 해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은 1948년 8월 15일이지만, 군사정부의 진정한 수립은 김신조가 청와대 앞까지 내려온 1968년 1월 21일로부터 시작됐다. 사회 각 부문의 군사체제와 군사교육을 위한 인프라가 착착 깔렸다. 베트남 전선에 투입된 5만 대군이 미국으로부터 군사비를 뜯어오는 가운데, 현역 복무 기간 연장과 향토예비군 창설, 교련 실시 등을 기본으로 하는 군대식 시스쳄이 사람들의 일상에 더욱 깊이 뿌리내렸다. 

이 모든 것은 김신조 때문이었을까. 김신조를 보낸 북한 때문이었을까. 1967~1968년 남북한 간의 군 교전 횟수가 이전보다 10대 이상 증가했지만 전부 북한의 선제공격은 아니었다. 남북 간 충돌의 최소한 3분의 1은 남한 정부의 도발이었다 .

박정희에겐 지속적인 위기가 필요했다. 주한미군 철수를 막기 위해서였다. 군사정권과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였다. 사실 이 모든 것은 박정희 때문이기도 했다 1968년은 베트남 반전운동을 고리로 혁명의 불꽃이 세계 도처에서 타오르던 해였다. 베트남전에 참가해 미국과 남베트남 편에 섰던 대한민국의 1968년은 희미한 불꽃이 일렁이는 암흑이었다. 



316쪽

1967년 봄, 파리에서 경험했던 대중집회도 평화운동에 헌신하며 살겠다고 결심하는 중대 전기가 됐다. 그는 수백 명이 모인 이 집회 도중 손을 들고 연단에 나가 당시 베헤이렌의 이슈였던 한국인 병사 김동희에 관해 발언했다. 김동희는 1965년 7월 베트남전 파병 명령을 거부한다며 부산의 육군 병기학교를 탈영해 8월 대마도로 밀항한 한국군 병장이었다. 일본 망명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후쿠오카형무소를 거쳐 오무라수용소에 갇혔다. 베헤이렌은 김동희의 한국 강제 송환을 반대하며 일본 정부를 압박하는 중이었다. 다카하시가 파리의 집회에서 언급한 김동희의 처지는 좌중들의 공감을 얻었다 한 시간 뒤엔 집회의 정식 의제로 채택됐다. 집회 주최 쪽은 즉석에서 김동희와 관련해 한국 정부에 보내는 항의성명 문안까지 만들어 발표했다. 국제연대의 힘을 피부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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