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평범하지 않지만 평범한 소수장들의 이야기>
인권운동사랑방 엮음, 오월의 봄, 2013
12쪽
차별금지 사유의 삭제 자체가 신호탄처럼 한국 사회의 차별을 번쩍 비췄는데 아무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척했다. 그러면서 차별은 나쁜 것이라고 되뇌고 있었다.
무언가를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말하지 않는 것은 그것의 부재를 선언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래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을 보고 듣겠다는, 겁 없는 마음을 먹었다.
13쪽
많은 사람들이 차별은 특정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고유하게 부딪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차별은 사라져야 할 것이지만, 그/녀들에게서 사라져야 할 것이 된다. 나나 너는 차별을 하는 사람도, 차별을 받는 사람도 아니고, 오로지 그/녀들이 겪는 어떤 피해가 차별이 된다. '우리'의 문제가 아니므로 '우리'는 차별을 없앨 수 없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그/녀들이 말한다. 나, 나야, 네가 부른 그/녀가 아니라 너를 부르는 나, 나라고.
90쪽
대상에 따른 차별적 정책으로 나타나는 분할 통치는 지배의 오랜 전략이다.
109쪽
다수의 사람들이 소수자의 경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도록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고통의 이미지'를 극단적으로 전시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낯선 주체들의 경험을 대중들의 관습화된 연민에 기대어 전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관습화된 연민이란 다수자의 가치를 위협하지 않으면서 낯선 주체들의 경험에 기꺼이 동참할 수 있는 감정적인 계기를 마련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의 말처럼 연민도 이해와 소통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연민은 그 당사자가 자신의 경험을 굴욕적인 것으로 기억하도록 만들어 자기를 긍정할 수 있는 계기를 박탈하기도 한다.
112쪽
성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성애적 경험은 중요한 경험이지만 그것이 결정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성정체성은 차별과 억압의 경험, 동질감, 타인과 관계 맺기 등과 같은 다양한 경험 속에서 형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