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쯤인가, 우리 집에서 평화밥상 모임을 했다. 오는 애들한테 집들이 선물 환영한다고 구걸을 했는데, 그 가운데 나동이 내 마음을 어찌 알고 화분을 사 왔다. 비가 엄청 많이 오는 날이었는데 합정에서 우리 집(파주)까지 그걸 들고 왔다고 했다. 그 고생도 고생이지만 화분이 무척 예뻤다.
뱅갈고무나무란다. 전혀 예민하지도 않고 물도 자주 주지도 않아도 되고, 물이 부족하면 신호를 보내는데 그때 줘도 괜찮다고 했다. 이런 쉬운 녀석조차 죽인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인 거처럼 말했다. 좀 안심이 되었다. 내가 화분에 신경을 많이 쓰거나 잘 보살피는 성격이 아닌 걸 나도 알기 때문에...
그리고 한동안 화분을 잊고 있었다. 어느날 화분을 보는데 잎사귀가 많이 떨어져 있고 남아있는 잎들도 가장자리가 검게 변해가고 있었다. '무슨 병에 걸린 걸까? 아님 물이 부족했나?' 바로 화장실에 가서 물을 듬뿍 줬지만 그나마 남아있는 잎들까지 떨어질 뿐이었다.
키우기 쉽다고 했는데, 내가 이걸 또 죽인건가 싶었는데, 가지들을 보니 끄트머리에 새순이 돋아나고 있는 게 아닌가. 맨 밑 가지는 새순이 떠져서 아주 작고 보드랍고 앙증맞은 새 잎사귀가 아직 손을 채 다 펴지도 못한 채 있었다. 잎사귀 갈이(이렇게 부를 수 있다면)를 하느라 원래 있던 잎들이 다 떨어졌나보다.
며칠이 더 지나서 보니까 아기 손마냥 조그맣던 새로 난 잎이 제법 커져 잎사귀 모양을 하고 있었다. 물론 아직 색깔은 짙은 녹색보다는 투명한 연두색에 가까웠고, 잎이 얇아서 반투명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지만 말이다.
새롭게 돋아나는 새순들, 꼬물꼬물 자라는 잎사귀들이 보는 일이 생각보다 재밌는 일이 아닐까? 관찰일기까지는 아니어도 자주 들여다보면서 변화를 써 볼까 한다. 그러면서 함께 쓸 수 있는 이야기도 덧붙여 봐야지.
아래 사진은 내 방에 있는 뱅갈고무나무 지금 모습. 맨 밑에 잎사귀 두 개가 우리 집에 온 뒤 새로 난 잎사귀들이다.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새순이 올라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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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구치소에서 평택 대추리 관련 재판을 받았다. 처음에는 중방(3평, 5명 정도 같이 썼음)에서 지내다가 독방을 요청해서 옮겼다. 원래 독방은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닌데, 나는 집시법 관련 재판을 받는 중이라 공안수로 분류되어 독방에 갈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24시간 부대낄 일이 없고 TV도 보기 싫을 때는 꺼 놓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하루 종일 책을 읽거나 편지를 쓰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뭔가 좀 허전하기는 했다. 사방이 회색빛 시멘트로 둘러쌓인 좁은 공간 안에 살아있는 존재가 나 혼자라는 자각때문이었을 거다. 그래서 국화 화분을 나눠줄 때 나도 하나 달라고 했다. 국화 화분을 벗삼아 지내려고. 그런데 한 달도 채 못 되어서 국화가 죽어버렸다. 물을 너무 많이 줬는지, 아니면 너무 안 줬나? 그것도 아니면 햇볕이 안 들고 통풍도 안 되는 수원구치소 건물 구조 탓인가? 아무튼 너무 쉽게 손 한 번 써 보지도 못하고 국화 화분이 죽는 걸 가만히 지켜봤다.
그리고 갑자기 쓸쓸하고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좁은 방 안에서 시멘트 덩어리 속에서 살아있는 거라고는 나와 저 국화 화분 둘 밖에 없었는데, 국화가 죽었으니 이제 나 혼자만 남았다는 생각이 무섭게 다가왔다. 1년 2개월 감옥에서 지내는 동안 외로움, 쓸쓸함 이런 감정을 가장 크게 느꼈을 때가 바로 이때였다. 이 세상에 나 혼자만 남은 거 같은 그런 느낌. 그때 그 느낌을 다시 겪고 싶지 않다.
그 뒤론 화분을 키우거나 그런 적이 없는데, 딱히 화분이 죽으면 또 혼자인 기분이 들 거 같아서 그런 거는 아니다. 그냥 단지 내가 게으르고 식물을 키우는 거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집으로 이사 오면서 화분을 다시 들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 하나 생겼다.
저 뱅갈고무나무는 수원구치소에서 만난 국화처럼 그리 보내지는 않을 거다. 한번 잘 살아보자,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