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41쪽
"한밤중에 잠에서 깨곤 해...... 누군가 옆에서...... 울고 있는 것 같아서...... 나는 여전히 전쟁터에 있어......
우리 군이 퇴각하는 중이었는데...... 스몰렌스크 근교에서 어떤 여인이 나한테 자기 원피스를 갖다주더라고. 그래서 얼른 그걸로 갈아입었지. 우리 부대에 여자는 나밖에 없었어...... 다 남자병사들이었지. 평소엔 바지를 입었는데, 그날따라 여름 원피스를 입은 거야. 그런데 하필 갑자기 그게 터졌지 뭐야...... 생리가....... 긴장을 많이 한 탓인지 예정일보다 이른 때였어. 너무 부안하고 또 너무 속을 끓여서 그랬던 거 같아. 하지만 그렇다고 거기서 내가 뭘 어떻게 하겠어? 세상에, 얼마나 창피하던지! 정말 말도 못하게 수치스러웠지! 우리는 잠자리도 여의치 않아서 닥치는 대로 아무데서나 잠을 잤어. 덤부 아래서도 자고, 도랑 속에서도 자고, 나무 그루터기 위에서도 자고. 숲속은 위들이 자기엔 잠자리가 늘 부족했지. 우리는 반쯤 정신이 나간 채 행군했어. 조국에 속을 만큼 속았다는 생각에 아무도 믿을 수가 없었지...... '대체 우리 비행대는 어디 있고 우리 탱크는 어디 있는 거지?' 하늘 위를 날아다니고, 땅바닥을 달려가고, 쾅쾅거리는 것은 죄다 독일군이었으니까.
그러다가 포로로 잡혔어. 포로로 북잡히기 바로 전날 나는 두 다리가 모두 으스러지는 중상을 입었지...... 바닥에 쓰러져 있는데, 얼마나 피를 ㅁ낳이 흘렸던지 온몸이 내 피로 흥건하게 젖었어...... 무슨 힘으로 밤에 숲까지 기어갔는지 몰라...... 우연히 나를 발견한 빨치산 덕분에 목숨을 건졌지......
나는 이 책을 읽을 사람도 불쌍하고 읽지 않을 사람도 불쌍하고, 그냥 모두 다 불쌍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