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여, 오라 - 아룬다티 로이 에세이집
9월이여, 오라 - 아룬다티 로이 에세이집
아룬다티 로을 행이 지음, 녹색평론사, 2004년
<작가와 세계화>
26쪽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그 국민을 향해 선전포고도 없는 전쟁을 거는 나라에서 작가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성가신 책무를 걸머지는 일입니다.
-> 여기서 다른 무엇보다도 국가 폭력을 전쟁이라고 표현한 것이 참 흥미롭다.
31쪽
이런 새로운 유혹이 폭력과 억압보다도 훨씬 더 효과적으로 우리를 침묵시킬 수 있다는 매우 현실적인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아마도 언론자유가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과연 진정한 언론자유가 있습니까?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말이 '팔리지' 않을 때에도, 우리는 말을 할까요?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모두가 '팔리는 것들'을 찾는 데 열심이지 않을까요? 작가는 결국 궁중 어릿광대로 끝나지 않을까요? 아니면 우리의 CEO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시중드는 유능한 21세기판 환관이 되지 않을까요? 버릇없이 굴지만 상냥하게, 외설스러울지 모르지만 위험하지는 않게 말입니다.
34쪽
신중함과 분별있는 태도라는 것이 기식 비열함을 가리키는 완곡한 표현이었음은 인류역사에서 흔히 보았던 일입니다. 조심성이 실제 비겁함이 되고, 용의주도함이 기실은 일종의 아첨이 될 때 말입니다.
44쪽
중요한 것은, 오늘날 인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문제'가 아니고, 우리들 중 일부가 제기하고 있는 쟁점들은 '원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것들은 나라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엄청난 정치적 사회적 격변입니다. 이런 사태에 누군가 관여하게 되는 것은 그가 작가나 활동가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관여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 상황에 대하여 글을 쓰는 것은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문제들에 대한 공적 논쟁의 비전문화야말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전문가'들에게서 우리의 미래를 다시 낚아채와야 할 때입니다. 공적 문재를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인 언어로 질문하고, 그에 대한 대답을 또한 일상적인 언어로 하라고 요구할 때입니다.
53쪽
우리가 찾아내야 하고, 갈고 닦아 찬란히 빛나는 것으로 완성시킬 필요가 있는 것은 새로운 종류의 정치입니다. 그것은 지배의 정치가 아니라 저항의 정치입니다. 그것은 반대의 정치, 책임질 것을 요구하는 정치, 속도를 늦추는 정치, 세계 전역의 사람들과 손을 맞잡고 명백한 파괴를 막는 정치입니다.
64쪽
탈레반 정부가 뉴욕시를 폭격하면서 줄곧 폭격의 실제 목표물은 미국 정부와 그 정책들이라고 말한다고 상상해보자. 그리고 폭격을 하는 사이사이 탈레반이 아프간 국기를 꽂은 난과 케밥이 들어있는 봉지를 몇천개 투하했다고 가정해보자, 뉴욕의 선량한 사람들이 아프간 정부를 용서할 마음이 생길까? 그들이 굶주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식량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그것을 먹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그들이 그 수모와 그 깔보는 태도를 잊을 수 있을까? 루디 줄리아니 뉴욕시장은 사우디 왕자가 준 선물 1,000만달러를 되돌려 보냈다. 왜냐하면 그 선물이 미국의 중동 정책에 대한 우정어린 충고 몇마디와 함께 전해졌기 떄문이다. 자존심은 부자들만 누릴 수 있는 사치인가?
74쪽
국기(國旗)라는 것은 정부가 처음에는 국민들을 바보로 만드는 데 사용하고, 그 다음에는 죽은 자들을 위한 수의(壽衣)로 사용하는 색깔 있는 천 조각입니다.
87쪽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승리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국가 없는 민족이 국가를 선포할 떄, 그것은 어떤 국가가 될까요? 그 국가의 깃발 밑에서 어떤 끔찍한 일이 자행될까요? 우리가 싸워 얻어야 할 것은 하나의 분리된 국가일까요, 아니면 종족이나 종교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존엄하게 살 수 있는 권리일까요?
96쪽
오늘날 '세계화'는 가난한 국가에서 인기없는 구조개혁을 밀어붙이고, 반란을 잠재우기 위해서, 충성스럽고, 부패하고, 가급적 권위주의적인 정부들로 구성된 국제적 연합체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세계화'는 정의를 실현하는 척하는 법원을 필요로 합니다. '세계화'는 자유로운 척하는 언론을 필요로 합니다. '셰계화'는 핵무기, 상비군, 보다 엄격한 이민법, 삼엄한 해안경비를 필요로 합니다. 왜냐하면 세계호란 오직 돈과 상품과 특허와 서비스에 관한 것이지, 결코 사람들의 자유로운 이동이나 인권존중에 관한 것도, 인종차별이나 화학 및 핵무기, 또는 온실효과와 기후변화, 또는 정의에 관한 국제적 협약에 관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화길히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