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기

수치심없는 인간-김진숙을 부르던 입으로 자기 회사 노동자들에게 해고를 말하다.

스테고 2011. 12. 15. 20:50
이 모든 일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그래서 저치들이 어디 가서 진보연 하지 못하도록, 자기들이 저지른 악행을 은근슬적 없었던 일처럼 하지 못하도록 해야한다. 그런데 너무 게을렀다. 이제라도 다시 다짐하자. 이 모든 일을 기록으로 남기자. 또 언제 다시 글을 쓸지 모르지만, 그래도 다시, 아니 처음으로 시작하겠다.

수감시절 책으로 만난 서경식과 서경식을 통해 만나게 된 프리모 레비는 내게 큰 인상을 줬다. 특히 인간이 지녀야 할 수치심에 대한 통찰과, 수치심을 지니지 않은 가해자들의 수치심까지 떠 맡고 저들도 인간임을 증명해야했던 레비의 삶이 내게 커다란 의미로 다가왔다. 부끄러워해야할 자들이 오히려 떳떳하고 당당한 세상. 우리가 저치들의 수치심까지 담당해야하고, 그래서 저치들은 관심도 없는 '저들도 인간이다.'는 사실을 우리가 증명해야하는 역설. 그 역설적이 상황 때문에 레비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 그러니까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는 건 정말 감옥 생활보다 더 지옥이다.

노사 관계가 딱히 좋았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막장으로 치닿기 전에는 분명 경영진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경영진이니까, 노동자와는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는 거고, 노동자와 처지가 다르니 갈등하는 거라고. 혹 조금 나쁜 사람이거나 조금 무능한 사람이어도 어쨌든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난 8월에 열렸던 징계위원회를 계기로 나는 더 이상 저치들이 사람이라는 생각을 머리에서 지워버렸다. 사람이라면 수치심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저들에게 '수치심'을 털끝만큼도 발견할 수 없었다.

발단은 이러했다. 어느날 대표이사가 전 직원에게 우리 회사에서 나온 책 리스트를 나눠 주며 읽은 책을 표시해서 내라고 했다. 그런 조사를 왜 하는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 설명도 없었다. 사람들은 당연히 반발했다. 몇 몇은 사내 게시판에 대표이사의 지시를 비판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몇 명은 그냥 대충 거짓으로 작성해서 내고, 나를 포함한 몇 명은 제출은 하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을 덧 붙였다.

'전'은 독서실태조사표를 백지로 냈다. 하지만 여름 휴가를 다녀온 뒤 다른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든 다 제출한 것을 알고 나름의 기준으로 조사표를 작성해서 다시 냈다. 하지만 대표이사인 '윤'은 이미 마음이 상했던 거 같다. '윤'은 '전'에게 왜 백지로 냈는지에 대해 경위서를 쓰라고 했다. '전'은 경위서를 쓰기 전에 A4 한 장 정도 분량으로 간단한 편지글을 써서 전달했다. 그리고 난 뒤 경위서를 냈다.

회사는 며칠 뒤 징계위원회 소집을 알렸다. 징계 사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고, 다만 '전'이 단협 징계 사안이 "타인에 대한 언어폭력"을 했다는 것과 취업규칙 징계 사유인 "근무에 관한 신고, 제출을 허위로 하거나 신고, 제출, 승인, 허가 등을 받아야 할 사항에 대하여 이를 태만히 한 경우", "소행불량으로 회사 내 풍기질서를 문란케 하였을 때", "동료 간, 상급자에 대한 항명 또는 폭행"에 해당한다고 했다. 노조에서는 '전'의 어떤 행동이 언어폭력이고, 소행불량인지 밝히라고 했지만 회사에는 구체적인 답변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따져 물었다. 사유가 뭐냐고. 대표이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대표이사에 대한 언어폭력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어떤 표현이 문제냐고 물었다. '생뚱 맞다, 강압적인 업무지시다, 기계적 충성도 조사' 이런 표현들이 대표이사에 대한 언어폭력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 표현들이 다소 감정적이긴 하나 징계사유로 볼 수 없다고 했다.
소행불량은 뭐냐고 물었다. '전'이 대표이사에게 보낸 편지를 사내게시판에 올려서 전직원이 공유하게 한 것이 문제란다. 헌데 그거 대표이사가 '전'에게 올리라고 시켰다. '전'이 반발하자 대표이사 '윤'은 업무지시라며 강압적으로 이야기했다. 대표이사가 시켜서 한 일을 징계사유랍시고 들고 왔다. 알고 보니 사측 징계위원회 위원들은 대표이사가 그 글을 올리라고 지시한 걸 몰랐나보다.

회사 쪽 징계위원들은 '전'에게 정직 또는 해고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 이유가 가관이다. 대표이사가 더 이상 저 직원과 함께 일할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란다. 회사 쪽 징계위원들 면면을 보자. 사내 이사인 김, 전교조와 글쓰기교육연구회 활동을 하는 박, 민교협과 한철연 활동을 하는 김, 그리고 농부철학자라고 스스로를 알리는 윤. 우리 사회에 이름난 진보 인사들이다. 노조는 희망 버스 몇명 가냐며 묻고, 해고는 살인이라고 외치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대표이사를 비판하는 편지를 썼다고 징계위를 열더니 대표이사가 저 직원과는 일할 수 없다고 했다고 정직이나 해고를 해야한다고 한다. 심지어 '박'은 "'전'의 양심은 존중한다. 하지만 양심에 따라 행동했다면 거기에 책임도 져야한다."고 했다. 이 말은 병역거부자들에게 "병역거부 양심을 존중한다. 하지만 법을 어겼으니 감옥에 가라."는 말과 똑같은 말이다.

나는 징계위원회를 거치면서 마지막 끈을 잘라 버렸다. 저 사람들이 인간이라는 사실이 적혀있는 끈. 가늘게 이어져 온 그 끈. 그들은 그냥 사장이고, 경영진이고 자본가일 뿐이었다. 사회에서 진보 인사로 존경 받는 저치들. 그들이 회사 안에서도 진보적일 거라는 기대는 애시당초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온갖 위선으로 포장한 그 사람들이 징계위원회에서 보여준 태도와 입장은 정말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탄식이 절로 나게 했다.

하지만 아직 저들은 더 보여줄 것이 있었다. 징계위원회는 노동조합의 반대로 중징계를 못하고 끝이 났다. 회사가 할 수 있는 징계는 노조의 동의를 얻지 않아도 되는 경위서 정도였다. 헌데 징계위원회 다음 날 회사는 '전'을 대기 발령 내렸다. 가서 따지니 징계가 아니라 인사 조치란다.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징계였다. 우리는 분노했지만 일단 참기로 했다. 그래봤자 자기들이 원하는대로 '전'을 자를 순 없을테니까. 그런데 이번엔 컴퓨터를 못쓰게 했다. 대기발령인데 어떻게 컴퓨터를 쓸 수 있냐는 거다. 개소리였지만 또 한 번 참았다. 개인 컴퓨터를 가져와서 쓰려고 하니 또 뭐라고 그랬다. 대기 발령이 무슨 뜻인지 모르냐고 . 또 참았다. 책을 읽고 있으니 회사에서 개인 책을 읽으면 안된단다. 개니까 개소리 하는 게 당연하지. 참았다. 압권은 '전'에게 내려진 공식적인 징계인 경위서 였다.

'전'은 경위서를 써서 냈다. 그런데 경위서가 반려되었다.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는 다고 다시 쓰라는 거다. 이 사람들은 이걸 무슨 반성문으로 여기고 있었다. 반성문 그게 어떤 건가! 교사들이 학생을 훈육의 대상으로 여기고 쓰게 하는 아주 더러운 글쓰기다. 교육에 대해 고민을 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을 그 반성문. 우리 나라에서 가장 좋은 교육서를 낸다고 자부하는 회사에서, 직원에게 반성문을 강요했다. 제대로 반성하지 않는다고 다시 쓰라고. '전'은 노조와 상의해서 살짝 말을 바꾸었다. 이 상황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고 대표이사가 언어폭력이라고 느꼈다면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고. 여전히 대표이사는 반성하지 않는다며 다시 써오라고 했다. '전'이 그 당시 내린 판단과 생각이 '잘못'이었다고 써오라고 직접 코치까지 했다. 이 무슨 민주인사에게 거짓 자백을 받아내는 경찰도 아니고.

결국 일은 노조가 나서면서 일단락 되었다. 반성을 강요하는 경위서는 잘못이라는 법원 판례를 제출하면서 경위서는 사실관계만을 쓰는 문서라고 못 박았다. '윤'은 노조가 맞지 않는 판례를 들먹인다고 했지만, 결국 경위서를 다시 요구하지는 않았다.

과연 저들은 저렇게 살아도 부끄럽지 않은 걸까? 수치스럽지 않은 걸까? 김진숙을 찬양하던 입으로 자기 회사 노동자에게 해고를 말해도 정녕 괜찮은 걸까? 이소선을 찾고, 전태일을 부르던 목소리로 자기 회사 노동자들에게 치졸하게 굴어도 자기들이 내 뱉은 말들이 부끄럽지 않은 걸까? 아이들을 살리는 교육서를 낸다면서 훈육용 반성문을 노동자들에게 요구해도 저들의 자아는 분열되지 않는 걸까?

저들도 사람이라면 저들도 수치심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걸 찾을 수 없었다. 그 뒤로, 지금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