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일기

남겨진 자의 권력과 말, 그리고 쫓겨난 자들의 서글픔

스테고 2015. 2. 26. 16:28

오늘 한겨레에 실린 한홍구 평화박물관 상임이사의 시론. 

화가 나지는 않는다. 짜증나지도 않는다. 서글픈 절망감이 느껴진다. 


어떤 사람이 잘못을 한 번 했다고 그 사람이 사회적으로 매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한 번 이면에 숨어있는 무수히 많은 잘못을 바라봐야 한다(그런 의미에서 어떤 사람에 대해 하나의 잘못만 보지 말고 총체적으로 봐야한다는 말은 옳다). 인간은 어느 누구도 모든 면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을 수 없다. 장애를 가진 유색인종 이주여성 비정규직 성소수자 노동자이자 왼손잡이에 기타 등등... 이런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것은 누군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인간은 모두 그래"라며 면죄부를 주자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인간이라는 한계와 현실을 인정하고 여기서 시작해야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위치에 서 있기도 하고, 올바르지 않은 생각을 할 때도 있고, 올바르지 않은 행동을 할 때도 있다. 정말로 큰 잘못은 잘못을 한 바로 그 시점이 아니라 그 뒤에 일어난다. 반성하지 않는 것, 사과하지 않는 것, 문제를 인식하지 않는 것이 진짜 문제다. 


내가 알기에 적어도 한홍구 상임이사는 평화박물관 활동가들이 집단 사직한 사건에 대해 어떤 종류의 입장표명도 하지 않았다. 여러 루트로 전해들은 바로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공식적으로도 그는 자기가 마음에 안 드는 활동가를 해고하는 것에 반발에 활동가들이 모두 사임한 일에 대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식의 이야기도 한 적이 없다. 나는 당시 정말이지 한홍구가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한홍구 상임이사가 활동가를 부당해고 했다고 해서, 그가 교수직에서 물러나야한다거나 그의 전공분야에 대한 대중강연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부분은 사람마다 의견이 많이 다를 거 같은데, 같이 이야기를 나눠볼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한홍구가 다른 것도 아닌, 노동의 문제를 진보적인 시각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무척이나 불편하다. '평화의 눈으로 본 노동'이란 제목으로 강의도 하던데 나는 그가 적어도 노동에 대해서는 강의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근데 그건 그냥 내 생각일 뿐이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서 아주 소수일 거다. 한겨레 신문에 실린 한홍구의 글이 서글픈 절망감으로 다가온 건 그때문이다. 해고한 사람은 여전히 진보진영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를 호소하고 있고, 그에게 해고당한 활동가는 한겨레 신문을 통해 한홍구의 아름다운 말을 읽는다. 그리고 오늘자 한겨레 신문에 실린 한홍구의 글은 분명 노동자들의 싸움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가 해고한 노동자(혹은 활동가)들만 빼고는 말이다.

사실 이런 케이스는 비일비재하다. 진보 진영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조직을 떠나는 건 가해자가 아니다. 약자가 떠나게 된다. 이게 바뀔 거 같지 않다. 평화박물관 사직 활동가들은 앞으로도 한겨레에서 한홍구의 글을 읽어야 할 거고, 나와 내 옛동료들 선배들은 한겨레에서 윤구병의 글을 읽어야 할 거다.  


그리고 또 하나 서글픈 까닭. 윤구병은 내게 그냥 나쁜 사장이었다. 나는 그를 처음 본 게 보리출판사에서였고, 우리의 관계는 늘 사장과 노동자였으니 그의 다른 모습은 모른다. 내가 아는 건 그가 나쁜 사장이라는 것. 그래서 그가 나쁜 사장이라고 비판하는 것에 나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하지만 한홍구는 병역거부 운동을 함께 해 온 동료나 마찬가지인 사람이었다. 감옥에 갔다와서 인사드리러 가기도 했다. 분명 병역거부운동에 그리고 나에게 지워지지 않을 족적을 남긴 사람이다. 그를 비판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쓰는 건 참 마음 아픈 일이다. 지금은 그에 대한 애정이 남아있지 않지만, 그렇더라도 그와 함께한 시절 때문에 이런 글을 쓰는 게 결코 편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