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일기

죄인은 만들어진다

스테고 2012. 11. 21. 09:20

대한문 앞 함께살자 농성장엘 다녀왔다. 약속이 있어서 낮 시간에 잠깐 있다가 갔는데, 그 사이에 두 군데서 농성장에 취재를 왔다. 조선일보가 불법 농성장 운운하면 톱기사로 다뤄 준 덕에 조금 유명세(?)를 치르는 거 같았다. 불법이라... 갑자기 감옥 안에서 하던 생각이 떠올랐다. 


죄가 있는 사람이 감옥에 가는 게 아니라 감옥에 간 사람이 죄인이 된다

감옥 안에서 여러 사람을 만났다. 대부분은 법을 어기고, 다시 말해 죄를 짓고 들어와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는 죄가 없는데 억울하게 들어와 있는 사람도 분명 있다. 억울하진 않았지만 죄가 없이도 감옥에 갇혀있는 건 우리 병역거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사람들은 죄를 짓기는 했지만, 실형을 선고받을만큼 큰 죄가 아닌 경우도 있었다. 이 모든 이들은 감옥에서 나가면 죄인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살게 될 사람들이었다.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의 비리에 대해 폭로한 게 2007년이었으니, 나는 그 소식을 감옥 안에서 들었다. 나중에 김용철이 쓴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어보니, 이건희가 저지른 잘못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할뿐 아니라 사법처리를 받아야 할 심각한 범죄였다. 하지만 이건희는 감옥가는 시늉만을 했을 뿐이다. 한화 김승현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이유가 어쨌든 조직폭력배를 동원해서 사람을 납치하고 스스로 쇠파이프로 위협을 했다. 이건 행위만 놓고 본다면 구치소 폭력방에서 재판 받고 실형을 받아 살아야 할 판이다. 그렇지만 김승현도 구속되는 시늉만 하고 병보석인가로 나왔을 거다. 밤깊은 야산에서 쇠파이프 휘두르던 건장한 아저씨가 휠체어 타고 나가는 꼴이란. 

큰 죄를 지은 사람들은 감옥에 안 간다는 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혹 감옥 가더라도 감옥 안에서 가장 좋은 방에서 가장 좋은 대접을 받다가 갑자기 아파서 휠체어 타고 나가서 건강이 회복되어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다. 한 명을 죽이면 살인자가 되지만, 10명을 죽이면 살인마가 되고, 1만 명을 죽이면 영웅이 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결국 큰 죄를 지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죄인 취급 받는 일은 거의 없다. 반면 자잘한 죄를 지었든, 죄를 짓지 않고 억울하게 감옥에 갔든, 감옥에 갔던 사람은 여지없이 죄인이 된다. 

아무튼 사람들은 대체로 이건희와 김승현을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 천 명을 정리해고한 사장님을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반면 카드빚 못 갚아서 감옥에 들어와 있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그 아저씨는 사람들에게 전과자로, 죄인으로 낙인찍힐 거다. 정리해고에 맞서 싸우다 감옥에 구속된 노동자들 또한 죄인 취급을 피해가기 어렵다. 카드빚 몇 백만 원 못 갚은 사람과 수천억을 날려먹은 사람 중에 누가 더 큰 죄를 저지른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진짜 죄인들은 감옥 밖에 있었다. 


법을 어긴 사람이 죄인인가?

누명을 썼든 아니든 감옥에 있는 사람들의 죄는 법을 어겼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법을 어기면 죄인이라고 아주 쉽게 생각을 하지만, 나는 좀 생각이 다르다. 

법에 따라 죄인이 된다고 쳐보자. 그 유명한 장발장이 있다. 배 고파서 빵을 훔친 사람. 법에 따르면 장발장은 죄인이다. 하지만 이 법이 공정하려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만 적용되고 누군가는 적용되지 않는다면 그건 법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인 형평성을 잃는 게 아닌가. 누구든 빵을 훔치면 재판을 받고 죄인이 된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말은 거짓말이다. 부자들은 배가 고파서 빵을 훔칠 일이 없다. 이럴 때 절도죄는 형식상으로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등하게 적용되는 거 같지만, 실제로는 가난한 사람들을 처벌하기 위한 법이고 부자들은 절대로 걸려들 일이 없는 형평성을 잃은 법이다. 다른 예도 얼마든지 있다. 당신이 재벌집 아들이라면, 혹은 고위 관료의 딸이라면, 당신은 당신이 주장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거리로 뛰쳐나와 집회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집시법은 집회 말고는 다른 수단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만 잡아가는 법이다. 우리가 철썩같이 믿고 있는 많은 법들이 형식적으로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적용되기 위한 법이다. 

또한 법은 늘 변한다. 때로는 좋게 변하기도 하고 때로는 개악이 되기도 한다. 어제 죄가 되었던 일이 내일 죄가 아닐 수도 있다. 병역거부도 지금은 죄이지만, 병역법이 개정되고 대체복무제도가 도입되면 죄가 아니게 된다.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죄가 아니었던 것이 죄가 될 수도 있다. 법은 사람이 만든 것이니까, 법이 가질 수 있는 진리의 최대치는 사람이 증명해 낼 수 있는 진리의 최대치밖에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에 따라 공간에 따라 같은 행위에 대한 다른 법이 존재하고 또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법을 어긴 사람이 내일도 죄인이라는 확신을 누가 할 수 있나? 물론 살인처럼 너무도 자명한, 그에 대한 절대 변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있지만 많은 것들은 법이 바뀌는 것에 따라 그 행동에 대한 판단도 바뀔것이다.

게다가 죄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법이 유일무이한 게 아니다. 마치 법이란 것이 정말 대단한 절대자인 거 같지만, 우리는 때로는 다른 기준으로 죄의 유무를 판단하기도 한다. 도덕이나, 상식, 종교 같은 것들이 예가 될 수 있겠다. 어떤 군인이 전쟁 시 명령에 따라 적국에 폭격을 했다고 해 보자. 많은 민간인이 죽었을 거다. 그는 실정법상으로는 죄인이 아닐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가 씻기 어려운 죄를 지었다고 생각할 거다. 사회에 따라 시대에 따라 이런 종교적인 판단이나 도덕적인 판단이 법의 판단보다 더 중요한 잣대가 되어 죄가 있고 없음을 가리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잣대들도 법과 마찬가지로 시대에 따라 공간에 따라 다르고 끊임없이 변한다. 

법을 어겼더라도 다른 판단 근거들에 의해 죄인이 아니라고 판단할 수도 있고, 반대로 법은 지켰지만 다른 판단 근거들로 보자면 크나큰 죄를 지은 사람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 법만이 죄를 판가름하는 절대 잣대가 아니다. 법을 어긴 사람은 말 그대로 법을 어겼을 뿐, 다른 모든 잣대를 어긴 건 아니라는 거다. 



법을 어긴 사람들 가운데 가장 크게 어긴 큰 죄인들은 죄다 감옥에 있는데, 그리고 그 법이라는 것도 많은 경우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적용되기 위해 태어난 불평등한 것들이고, 오늘 내일 달라서 오늘 죄인이 내일은 무죄일 수도 있다면. 죄를 판단할 때 법이 아닌 다른 여러 잣대들도 있을 수 있다면?


결국 죄인은 죄를 저질러서 되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필요하기 때문에 타인을 죄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누가 누구를 왜 어떻게 죄인으로 만드는지 곰곰히 생각해봐야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