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과 모욕감
회사 다닐 때 나는 종종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하곤 했다.
"감옥에서보다 회사 다니면서 더 큰 모욕감을 느꼈어."
이 말은 상징적인 표현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진심이었다. 진짜로 나는 감옥에서보다 회사에서 더 많은 모욕감을 느꼈다. 헌데, 그걸 다시 볼 기회가 생겼다.
나는 지금 8주 과정으로 병역거부자를 대상으로하는 트라우마 치유 프로그램에 참가 중이다. 거기서 나온 이야기를 여기다 옮겨 적을 순 없지만, 상담선생님이 해 준 말 가운데 내 정수리를 후려치는 말이 있어서 한줄 적어본다. 위에 잠깐 언급한 것과 연관되는 말이다. 수치심과 모욕감에 대한 말이다.
그 선생님은 수치심의 언어를 모욕감의 언어로 바꿔야한다고 했다. 수치심은 가해자가 삭제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화살을 자기 자신에게 돌린 단다. 무기력에 빠져서 허우적 대는 것조차도 '내가 게으른 거야.' 이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거다. 그건 가해자가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수치심을 모욕감의 언어로 바꾸고 가해자를 명확하게 해야한다고 했다. 그것은 남탓 하는거랑은 근본적으로 다른 거라고.
나는 회사 다니면서 모욕감을 너무 많이 느꼈는데, 그게 딱히 나쁜 경험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확실히 내가 모욕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가해자를 명확히 했기 때문이다. 대표이사가 지껄이는 위선으로 포장된 말과 행동에 대한 분노가 모욕감의 원천이었다. 내 스트레스는 내가 못난 탓이 아니고 저 위선자 대표이사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
만약 내가 느낀 감정이 모욕감이 아니라 수치심이었다면? 음... 더 큰 좌절과, 어쩌면 우울증을 겪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감옥보다 회사에서 더 많은 모욕감을 느꼈다고 말할 때는 회사 생활이 감옥 생활보다 더 불행하다는 걸 이야기 한 거 였는데, 모욕감과 수치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생각이 좀 바뀌었다.
감옥보다 회사에서 더 모욕적이었던 것은, 내가 감옥보다 회사에서 더 많이 싸웠기 때문이다. 감옥은 감옥이라고 한수 접고 들어가서 어지간한 문제를 그냥 눈감고 넘어갔지만, 회사에서는 세상에 자기 혼자 진보적인것 마냥 떠들어대면서 행동은 반대로 하는 사장놈이 눈꼴시려서 작은 것 하나하나까지도 그냥 넘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늘 싸운 건 아니지만, 대체로 싸웠고, 싸우지 않더라도 그건 전술적으로 넘어간 거였지 눈감지는 않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3년 동안 회사 생활에 한점 후회가 남지 않는다. 노동조합을 만들 일, 회사와 크고 작게 싸운 일, 회사를 그만 둔 일. 아쉬웠던 순간은 있어도 전체적으로 봤을 때 후회가 남을 자리가 없다. 나는 내게 모욕감을 심어주는 치들에 맞서 내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싸웠기 때문이다.
다시 감옥 생활을 떠올려본다. 모욕감이 들었던 경우도 많지 않지만 수치심으로 남아있는 기억도 별로 없다. 만약 내가 회사 다닐 때처럼 감옥에서도 예리하고 예민하게 교정당국과 맞섰다면? 모르겠다. 회사에서는 함께 노동조합을 만든 동료들이 있었고, 우리의 무기인 우리 말을 퍼뜨릴 수 있는 도구가 있었지만 감옥에서는 그런 것들이 없었지 않았나. 철저히 혼자 싸워야 했을 텐데... 아무래도 감옥과 회사를 병렬적으로 비교하기는 좀 무리인 거 같다.
하지만, 그렇지만, 지나고나서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감옥에서 한 일이 자랑스웠던 적은 없는데, 회사에서 한 일은 더 힘들고 모욕적이긴 했어도 더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