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일을 강요하는 것, 혹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삶을 강요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우리 회사는 봄 가을로 변산공동체 울력을 간다. 헌데 이게 의무 참가가 되면서 문제가 여러 번 생겼다.
의무라 하더라도(우리가 자발적으로 그 의무에 동의했냐는 차치하고라도) 특별한 사정이 있거나 몸이 안좋아서 변산 울력가기 어려우 사람들은 빠질 수 있어야 하는데, 회사에서는 모든 이가 다 가야한다고 고집한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또 안 가는 사람은 안 간다. 아주 강한 원칙이 고르지 않게 적용되는 거다.
실제 작년 가을 울력 때는 큰 수술을 앞둔 직원에게 변산울력 참가를 강요하다가 그 직원이 회사를 그만두기도 했다. 물론 딱 변산울력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변산울력을 강제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회사에서 봄 가을로 변산에 가서 농사일을 돕는 것은 무척 좋은 일이다. 농사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몸으로 배우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 좋은 살아 있는 교육이 강제 의무 교육이 되면서, 실제 변산 울력에 억지로 참가하는 사람들에게 무얼 배우게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원래는 봄 가을이 모두 의무 참가였는데 올 초에 단체협약을 개정하면서 봄만 의무로 가을을 자율 참가로 바꿨다. 솔직히 개인 생각으로는 봄 가을 모두 자율이 되어야 맞는 거 같지만, 뭐 협상이라는 게 이 쪽 뜻대로만 되는 건 아니니까... 한 번은 자율로 바뀐 것에 만족했다.
봄 모내기 울력이 바로 내일모레로 다가왔는데, 회사 인트라넷에 공지 글이 올랐다.
이번 울력부터는 휴지, 생수, 컵라면, 과자 따위를 준비하지 않겠다는 것.
저녁 먹고 난 뒤 술자리는 식당에서만 갖겠다는 것이다.
원래 변산공동체는 휴지나 생수 컵라면 따위를 멀리한다. 생태적인 삶을 지향하는 바람직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보고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올바르고 가치있는 행동을 사람들에게 강제로 시킨다면 그건 과연 올바를까? 만약 변산 울력이 전면 자율 참가라면 저런 조치들이 문제가 될 게 없다. 동의하는 사람들이 가는 거니까. 하지만 강제로 의무로 직원들을 참여하게 해놓고, 휴지나 생수 비누 샴푸 이런 것들을 쓰지 않는 것이 변산공동체 원칙이라고 우리도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하면 그건 그다지 올바른 거 같지 않다. 저런 것들을 줄이거나 쓰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무리 옳은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렇다.
술자리 이야기는 패스. 이야기할 건덕지도 없다. 무슨 고등학교 수학여행도 아니고, 회사에서 정해 준 자리에서 정해 준 사람들과 정해 준 시간에 술 먹으라니 나원참.
아무리 옳은 이야기, 훌륭한 삶의 방식도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할 때 옳고 훌륭한 거다. 강제로 억지로 하는 것은 권력이 무서워서 혹은 다투기 귀찮아서 복종하는 척 하는 것 밖에 안된다. 세상을 바꾸려고, 세상을 좀 더 좋게 만들어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나 자기 삶의 방식에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 동화되도록 해야 한다. 사람들은 더디 바뀌겠지만, 더러는 바뀌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그걸 억지로 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착한 일을 강요하는 거, 정치적으로 올바른 삶을 강요하는 거. 이거야 말로 가장 무서운 독재다. 부패하고 자기 이익에 눈 먼 자들은 독재자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 신념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자기 자신보다는 세상을 위해 산다고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사람들이 독재자가 되기 쉽다.